김혜련 칼럼
2018.12.24 10:37

지금, 여기 - 김혜련 노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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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으면 올 한 해가 간다. 낡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인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인들은 새로운 해를 맞으며 ‘최초의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그 갈망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있다. 새로운 시간, 최초의 빛나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한 해를 보내면서 ‘잘 살았나?’ 스스로 질문한다. 그런데 ‘잘 살았다’는 기준이 뭘까? 어떻게 살아야 잘 산 것인가? 그건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삶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시간의 유한성을 아는 사람들은 삶의 우선순위를 좀 더 근원적인 것에 둔다는 연구가 있다. 젊은 사람이라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거나 큰 병에 걸려 자신의 삶이 마냥 이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사라진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거다.

 

나이가 듦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달성하고, 소유하고, 획득하는 것보다는 일상의 기쁨과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데 그게 꼭 나이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른 선택의 차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올 삶이 불확실해지면, 생명의 덧없음을 강하게 느끼게 되면, 삶의 목표와 동기는 변한다. 삶의 초점은 미래에 올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여기’로 오게 된다. 건강한 젊은이는 새로운 사람이나 정보를 얻기 위해 밖으로 나가지만,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는 사람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선택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한계지어지고 협소해짐에도 사람들이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건 바로 ‘지금, 여기’라는 삶의 순간에 집중하고 기쁨을 느끼는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니 내 삶의 우선순위도 많이 달라졌다. 젊은 시절엔 새로운 경험, 넓은 사회적 관계, 세상에 나를 세우기 위한 분투... 어떤 업적이나 성취 같은 것, 특별한 것에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 해를 잘 보냈는가에 대한 질문의 기준이 달라진다.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삶의 기준이 된다.

 

이를테면 내 몸(생명)과 잘 지냈는가? 나는 조금 더 현명한 몸이 되었는가? 밥을 편안하고 기쁘게 먹었는가? 집을 좀 더 평화롭게 만들었는가? 내 먹거리를 내 손으로 얼마나 가꾸어 냈는가? 꽃과 나무들을 심고 보살폈는가? 가까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가? 고양이들이 살기 좋게 도왔는가? 고요하고 한가한 시간을 자주 만났는가? 산책을 하고 새소리를 듣는 기쁨을 누렸는가? 삶이 주는 무상의 선물을 얼마나 자주, 깊이 받아들였는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몸이 떨렸는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조금 나아지기 위해서 한 일이 있는가?

 

우리의 삶을 추동하는 동기는 변한다. 새해에는 좀 더 근원적인 것, 일상의 기쁨과 가까운 존재들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지혜를 터득해가기를 스스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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