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칼럼
2019.02.18 09:45

‘아픈 몸을 살다’ - 김혜련 노년칼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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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주 동안 감기를 앓았다. 처음 감기 기운이 느껴졌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소대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지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지나갔을 감기였다. 그런데 급성 중이염으로 귀에 통증이 오고, 기침이 심해져 가슴이 아파 잠을 잘 수 없었다. 나와 동년배인 제자의 아버지가 일주일 감기를 앓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감기몸살로 기운이 없으신 줄 알았는데, 숨이 가빠 병원에 가니 패혈증이었다고 한다.

 

지독한 감기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한 번도 감기로 중이염을 앓은 적이 없고 기침 때문에 꼬박 앉아서 밤을 세워본 일도 없다. 내 몸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몸은 통증을 통해 알려왔다. 아마도 여러 차례, 아니 수십 수백 번 몸은 알려왔을 것이다. 자신의 변화를.

 

그 변화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고집스러운 내 자아다. 그 자아조차 몸이 있어 가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몸을 나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말로만 몸의 중요성을 이야 기하지, 몸이 없으면 나도 없고 세상도 없는 당연한 이치를 당연한 듯이 잊고 살아간다. 언제나 젊음인 것처럼, 천년만년을 살 것처럼 산다.  

 

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아플 때이다. 아픔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내게 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때만큼 내가 ‘몸적인 존재’라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순간이 없다. 통증은 내가 당연한 듯이 여기고 살아가는 것들이 얼마나 특별하고 연약한 것인지 알게 한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무수한 요소들, 수천 만 가지 유기적 작동들, 그 어느 것 하나 나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 중 어느 하나라도 탈이 나면 몸은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힘들다. 그러니 평소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은 거의 신비에 가깝다. 그리고 그 신비는 우연에 기대어 있는 것이다. 내가 특별히 노력하고 애써서 이룬 성취가 아니라 자연이라는 거대한 우연의 한 조각으로서의 신비이다. 언제 어떻게 깨질지 알 수 없을 만큼 여린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여린 신비를 아프지 않을 때는 잊고 산다.

 

아프면서 건강할 때라면 당연하게 여겼을 것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이 겨울 따뜻한 집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식욕이 있어 밥을 먹는다는 사실, 한밤중 창밖으로 보이는 달의 사무치는 아름다움, 길 건너 고요히 서 있는 느티나무....평소라면 그저 스쳐지나갔을 많은 것들이 절실하고 소중했다. 아마도 통증은 그렇게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와 자신을 만나게 하는 몸의 신비로운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아플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야말로 나와 세상을 이루는 가장 근원적인 것들일 게다.

 

그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알라고 몸은 통증을 보내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욕망으로 부푼 자아에 갇혀, 여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배경화면처럼 두고 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라고, 부디 세상의 아름다움 속으로 깊이 들어가라고...

 

아프면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를 다시 읽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다녀온 사람이 자신의 아픔을 통해 걸러낸 맑고 투명한 깨달음과 세상에 건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걸러낸 사유들이 별처럼 빛났다.

 

나이 들어가면서 변하는 몸은 점점 취약해지고 고달파질게다. 부디 그 고달픔으로 쪼그라들고 어리석어지지 않기를....아니, 겁먹고 쪼그라들더라도 몸속에 존재하기를. 내 몸으로부터 도피하거나 내 몸을 마치 병원이나 약물에 맡길 물건처럼 대하지 않기를,

 

 ‘우연 위에 놓인 이 세계에서 삶은 부서지기 쉬운 한 조각 행운 같은 것‘(아서 프랭크)임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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