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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가 66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헌재 재판관들이 72, 낙태죄에 위헌성이 있다며 ‘여성의 자기결정권 손을 들어줬다. 7년만에 합헌결정이 뒤집혔다. 내년말까지 법이 정비된다. 2017 23만명 넘게 동참한 ‘낙태죄 폐지청와대 국민청원, 2016년부터 계속된 대중집회, SNS 해시태그(#주제어) 릴레이  낙태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끌어낸 변화다. 10~30 젊은 여성들이 중심에 섰다.‘(양성희 중앙일보 논설위원)

 

여성들의 힘으로 끌어낸 변화를 적극 환영한다.

 

그런데 낙태죄가 사라진다고 해서 여성들은 자유롭게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힘들다. 법이라는 것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법이 바뀐다고 사회구성원의 정서나 태도, 문화가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낙태죄 폐지 이후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이유이다.

 

지금과 같은 낮은 피임률, 성차별 사회구조, 미성년 또는 비혼인 부모에게 가해지는 편견과 차별, 과도한 양육비용, 실질적인 보육지원제도의 부재 등과 같은 상황에서는 임신중단을 막을 수 없다. 짧지 않은 임신기간과 남은 생애 전반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때로는 생계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임신중단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낙태를 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새로운 성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더 이상 임신에 대한 공포로 여성의 성을 억압해선 안된다. 상호평등하게 합의한 성관계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임은 왜 필요할까? 올바른 피임법은 무엇일까? 콘돔이 찢어지는 등 피임에 실패하거나 예기치 않은 성관계 등으로 인해 피임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출산을 할 지 혹은 임신중단을 할 지 결정할 때는 개인적, 사회적으로 어떤 삶의 조건들을 고려하면 좋을까? 출산을 하고 싶다면 향후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만일 양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출산을 하길 원한다면, 입양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임신중단을 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러한 내용들은 반드시 미리 구체적으로 교육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막상 필요한 상황이 닥쳤을 때, 당사자가 적절하게 대응하기란 매우 어렵다. 재난안전교육이 재난을 조장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듯,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포괄적 성교육은 ‘문란한 성문화’나 ‘무분별한 임신중단’을 조장하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겪고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교육이다. 오히려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져야 온라인과 포르노 등을 통해 형성되는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피임 실천율과 성공률을 높여서, 원치 않는 임신으로 임신중단을 하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둘째,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 해소되어야 한다. 2005년 고려대학교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및 종합대책수립’ 보고서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은 비혼여성의 대다수인 93.7%가 ‘미성년자 혹은 혼인의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다중 응답).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주요한 임신중단 사유가 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결혼한 부부만이 당당하게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비혼여성의 임신은 오로지 남성 파트너와 결혼하여 ‘정상 가족’으로 편입할 때에만 용인된다. 본인 또는 파트너에게 결혼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는, 설령 출산을 하고 싶다 하더라도 혼외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현실적인 양육부담 때문에 임신중단을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는 혼외출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비혼모/비혼부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법으로 임신중단을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혼인율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혼외출산을 배제하고서 출생률을 증가시키기 어렵다.

 

셋째,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국외로 입양 보낸 나라이다. 국내 입양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2016년도에도 전체 입양 아동의 38%가 국외로 입양되었다. 한편으로는 ‘저출산문제’가 심각하다며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지만, 이미 태어난 생명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결혼 여부, 가족형태, 사회경제적 조건 등과 상관없이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있는 사회보장체계를 마련하고, 실효성 있는 보육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단이 가능할 뿐 아니라 누구든지 임신중단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환경이 조성될 때, 비로소 개인은 출산 또는 임신중단 여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혼외출산 ‘무분별한 성관계의 결과’로 낙인찍히지 않고 당사자가 결정한 삶의 형태로서 존중받게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여자도 낙태를 경험하고 싶은 여자는 없다. 낙태를 하게 만드는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이 있을 뿐이다.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경험하지만 여성들의 낙태 경험은 표면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낙태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갈등, 실제 산부인과에서 낙태를 하게 될 때 겪는 고통과 수치심, 외로움과 슬픔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이유는 사회가 낙태를 죄악시할 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도 수치와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낙태를 경험함에도(미혼보다 기혼 여성의 낙태율이 훨씬 높다. 많은 기혼 여성들이 낙태경험이 있다)낙태에 대한 ‘말’이 없다. 언어가 없으니 오해만 늘어난다.  

 

지금까지 낙태를 둘러싼 많은 논쟁들 속에 여성은 스스로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미투’운동은 수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의 경험을 드러내도록 고무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이상 수치심에 시달리며 네 삶을 그늘지게 하지마라.’고 여성들끼리 연대한 경험이 ‘미투’ 운동일 게다.

 

낙태죄 폐지를 계기로 여성들의 경험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낙태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내린 매우 어려운 선택이었고 큰 고통이었음’이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낙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고, 사회 구성원들(특히 남성들)이 부끄러워하기를 바란다. 그 부끄러움이 세상을 바꾸어가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박원서의 말>(마음산책 2018)에서 선생은 우리는 사랑있는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꿈이 없는 시대, 재미가 없는 시대, 상상력이 없는 시대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그렇다, 사랑 없는 사회는 꿈도 꿀 수 없고,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힘도 없다.

 

“진정한 해방의 세계란 과학도, 지식도, 이론도 아니고 ‘사랑의 힘’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나도 그렇다.

 

* 참조, 인용한 기사: ‘낙태죄 폐지가 끝이 아니야패러다임을 바꾸자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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