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
2018.05.07 22:27

저출산정책이 안 먹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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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정

 

출산장려정책은 산아제한정책의 맥락에 놓여 있다골목길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70~80년대에는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했고 삼천리가 초만원이 되어 터져나간다는 위기감이 만연했다마치 셋째자녀부터는 날 때부터 잉여이자 사회적 민폐인 것처럼 치부되었다잉여로 자란 아이들이 10대 후반만 되면 공장이나 농장에서 싼 임금을 받고 일을 했다높은 출산율은 압축적 근대화의 원동력이었다.

한편 정부주도의 인구감소정책은 제약회사의료계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져 피임과 낙태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둘도 많다는 식의 문구와 피임기구 광고가 나란히 인쇄된 달력이 집집마다 걸려있었다제약회사는 피임약과 기구를 팔았고지역마다 자리한 모자보건기관은 인공중절과 피임 수술로 호황이었다여아 감별 낙태는 흔한 일이었다. 80년대 어느 종갓집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려고 여덟 번 낙태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한 번은 동네 산부인과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들은 적도 있다. ‘처녀가 돈이 없어 마취 없이 낙태수술을 했다.’는 어른들의 대화를 들었다그 산부인과에서 일하던 간호사는 중기를 넘은 태아를 자궁에서 분리하던 날이면 술에 취해 울기도 했다새마을운동과 함께 잘 살아보자는 명목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던 70~80년대, 정부는 피임과 낙태라는 수단으로 여성의 몸을 잔인하게 통제했다.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의 원혼은 1990년대 M이라는 드라마에서 초록 눈을 뜨고 나타나 너는 날 몰라(ost)”하며 울어댔다. 90년대 당시, 성비는 여아 100명 당 남아 116.6명이었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항해 나온90년생 김지훈』 은 이름을 얻지 못한 수많은 미경이와 지현이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어느 여성단체에서는 낙태된 여아들을 위한 굿을 하기도 했다그렇게 수많은 아이들의 수는 효과적으로’ 감소해갔고, 집단 기억에 각인된 둘도 많다는 표어는 갈수록 힘을 발휘했다.  

낙태와 피임을 앞세운 즉흥적인 산아제한정책은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대재앙으로 이어졌고 한 번 떨어진 출산율은 올라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산의 덫이라는 말은 웬만한 정책으로는 출산율이 오르지 않아서 생긴 말이다정부는 지난 10년간 8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썼다고 한다그 많은 예산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는 게 일반적 반응이다. ‘여성의 가축화라는 비난을 받은 출산맵’ 제작에 일부 예산을 쓴 것은 확실하지만 말이다유배우자 여성에 대한 출산지원은 일부 효과를 봤다(유배우 여성은 합계출산율 2.0을 상회함). 결혼 안에서는 출산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비혼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은 세계최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쓰고 제도를 만들어도 질적 변화가 없다면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지금의 저출산 정책은 동생 선물’, ‘애국자’ 운운하는 캠페인 동원과 출산결정에 별 영향력이 없는 출산장려금 등에 머물러 있다나는 무엇보다 출산은 애국이다하는 말에는 강한 거부감이 든다. 80년대 다자녀 야만인을 요즘의 다자녀 애국자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 집단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애국을 위해 출산하는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출산이 애국이라면출산하지 않는 게 매국이라는 말인가?

우리는 저출산 현상과 인구절벽 위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이들 개개인이 모두 소중하며아이들이 곧 우리 사회의 미래라는 교훈을 얻었다어떤 가정의 아이라도 다 소중하다는 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그런데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비혼 출산에 대해서만은 유독 냉정하다비혼 출산에 대한 차가운 편견은,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에서 갓난아이가 발견되곤 하는 비극을 낳고 있다또 비혼 출산의 80%이상이 입양으로 이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사회적 편견과 지원 부족으로 인해 양육하려는 비혼 여성들 혹은 청소년 부부가 양육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지원하는 난임부부지원사업에는 예산을 쓰면서 태어난 아이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모순은 뭐란 말인가.

비혼 출산이 확대되지 않으면 출산율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성차별이 완화된 프랑스의 경우 여성경제참여율이 우리보다 높은 데도 출산율은 2.0을 넘어섰다프랑스의 출산여성 중 비혼의 비율이 무려 56.7%에 달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출산율의 열쇠가 비혼 출산에 있다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 정책은 차라리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여성을 배우자 유무에 따라 구분하고경험적 차원에서 무한한 의미를 지닌 출산을 집단적으로 수치화하며위험이 가중되는 환경에서 양육자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준다수치를 올리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여성의 주체적 결정에 따른 출산과 양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인간존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가부장적 차별에 대한 반성 없이는 저출산의 덫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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