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정
2018.07.26 09:26

텃밭이 건네는 말 - 정숙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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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텃밭과 돌담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헬렌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을 읽은 후 생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내를 벗어나면 학교, 병원 같은 시설 이용이 어려울 거 같아 시내에 작은 텃밭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풀 뽑는 일만해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러 가지로 투입이 많다 보니 ‘농산물은  먹는 게 남는 거다’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런데 텃밭을 가꿀수록 돈으로 따지지 못하는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밭에는 별별 생물들이 다 나옵니다. 이름은 친숙해도 자연에서 만난 적 없던 생물들도 많습니다. 귀한 맹꽁이도 있고, 거짓말 조금 보태서 뱀 만한 지렁이도 있습니다. 이런 생물들을 집안에서 봤더라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당장 때려잡으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밭에서 만나는 생물들은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밭에 곤충이 많아서 그런지 새들도 연신 들락거리며 먹이를 먹고 시끄럽게 지저귑니다.
 

상추와 고추, 가지를 심어두니 여름 반찬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야채를 넉넉하게 심어두면 만나는 사람마다 인정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애호박을 다섯 개나 땄습니다. 딸 때마다 정겨운 얼굴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하나는 엄마 드리고, 하나는 언니 주고, 하나는 이웃에 주고, 하나는 친구 주고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텃밭을 가꾸다 보니 마음도 자라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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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애호박을 찾으려고 호박잎을 마구 들추다가 깊은 덤불 속에  하니 자리 잡은 중년 호박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쉿~!” 중년 호박이 못 본 걸로 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저는 원래대로 호박잎을 덮어 두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왔습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호박은 다시 명상에 들어갔겠지요? 저 호박은 저렇게 조용히 익어갈 것입니다. 몸 가득 호박씨를 품고서요. 조용한 그늘 속에서 호박이 익을 수 있도록 호박잎과 키 큰 풀들이 도와줍니다. 찬바람이 불어 호박잎과 풀이 시들면, 그제야 누런 얼굴이 드러날 것입니다. 단단히 익은 늙은 호박은 밖에서 겨울을 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호박이 품고 있던 씨앗은 생명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날을 위해 저 호박이 묵묵히 밭을 뒹굴며 한 여름을 조용히 견디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호박 뿐이 아닙니다. 모든 식물들이 씨앗을 지키려고 참으로 애를 쓰는 거 같습니다. 방울토마토를 키워보니, 제 몸이 다 야윌 때까지 열매를 붙잡고 있더군요. 서리가 내릴 때까지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식물을 보면 기특합니다. 저는 제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늘 동동거리며 뭔가를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어주는 부모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아이들과 함께 밭을 가꾸고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주고 싶어 텃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밭을 망친다거나 모기에 물린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텃밭활동을 할 기회를 자주 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해거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밭에 물을 주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덤불 어딘가에 앉아있는 엄마호박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습니다. 엄마호박이 씨앗을 품고 어떤 기도를 올리고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하렵니다. 아마도 ‘소중한 씨앗을 잘 키워내는 지혜롭고 건강한 부모가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까?’ 하고 물어보렵니다. 아이들은 그 기도가 곧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기도 한 것을 금방 눈치 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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