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련 칼럼
2018.07.31 10:08

그가 노인의 속도를 존중했을 때… !

조회 수 311 추천 수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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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청리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작은 삼거리에서 버스가 가로막고 있었다. 정거장도 아닌데 말이다. 잠시 기다렸으나 여전했다. 창을 열고 목을 내밀었다. 버스가 커브를 돌아야하는 길 옆으로 남루한 차림의 할아버지 한 분이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었다. 자동차가 옆에 있는지 어쩐지 아랑곳없이 하염없이 느린 걸음으로.  

 

버스 운전사는 클랙슨을 누르지도, 창을 열고 소리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가 버스 곁을 지나는 그 느리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천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뒤 할아버지는 버스 곁을 지나갔고, 드디어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엉뚱하게도 ‘헌화가(獻花歌)’가 떠올랐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신라시대 아름다운 수로부인에게 벼랑 위에 핀 꽃을 꺾어 바치며 노래를 불렀던 노인. 몰고 가던 소도 잊고, 자기 나이도 잊고, 노래를 부른 당당한 노인이 남루한 차림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는 노인과 겹쳐졌다.

 

사실 조금 전 내가 본 풍경은 몹시도 낯설었다. 천년처럼 느꼈으나 실은 불과 이삼 분도 안될 그 짧은 시간에 내 안을 휘젓고 간 것들은 온갖 폭력이었다. 버스가 내 갈 길을 막고 있을 때, 즉각적으로 올라온 건 짜증과 조바심이었다 ‘저 할배는 귀가 먹었나? 좀 비키지’, ‘저 운전사는 왜 클랙슨도 누르지 않는 거지?’ ‘아, 더워, 왕짜증....!’ 노인에 대한 경멸, 공감이나 연민이 자리할 곳 없는 내면의 황폐함. 난 언제나 운전대를 잡으면 조급하고 참을성이 없어진다.

 

그런 내게 갑자기 ‘헌화가’를 부른 노인이 떠오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저녁 때 자리에 누워서야 비로소 그 이유가 잡힐 듯 했다. 하염없이 꾸물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가던 노인이 내 안에서 ‘존재 전환’을 한 것이었다. 답답하고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유유자적, 평온하게 자기 길을 가는 존재로. 그래서 헌화가 속의 아름다운 노인과 겹쳐진 거였다.

 

그런데 노인을 그토록 다른 존재로 전환시킨 건 바로 버스 운전기사가 노인을 대한 태도였다. 그가 노인의 속도를 존중했을 때, 클랙슨을 누르거나 소리치며 그를 다그치거나 주눅들지 않게 했을 때, 그는 자기다움을 지킬 수 있었다. 거추장스러운 노인네가 아니라 ‘자기답게’ 살아가는 온전한 존재로 ‘다시 보인’ 거라는 걸 이해했다. 부끄러움으로 몸이 오그라들었다.

 

모든 것이 젊은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그 젊음이란 것이 실은 생산성이라는 잣대로 계산되는 사회에서 늙음은 쓸모없음으로 등치된다. ‘빨리빨리’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세상에서 행위하지 않는 자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폴 투르니에는 <노년의 의미>에서 ‘노인은 더 이상 생산자가 아니라 오직 인간이라는 점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무시되고 폄하된다.’고 서구사회의 비인간적인 면을 꼬집고 있다.

 

버스 운전기사가 그러했 듯 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 때 노년은 자연스럽고 존엄할 수 있다. 삶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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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남자 2018.09.04 12:46
    버스 기사님의 마음을 저도 좀 배워야겠어요.
    노인의 속도를 존중할 수 있게 되길!
  • ?
    라라오 2018.09.17 15:48
    헌화가를 떠올린 선생님 마음, 참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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