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영 작가는 사랑바라기 수채화 개인전을 가졌던 권애숙 작가의 남편이면서 수채화를 전수하는 스승이기도 하다. 미리 정두영 작가를 소개한 후 권애숙 작가를 소개하는 것이 예의이나, 필자 역시 휴대폰 문자나 대로변 현수막을 보며 찾아다니는 터라 전체를 훑어보지 못하는 한계점은 분명하게 있다. 그렇지만 내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글과 그림을 올리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아마 비슷한 시기일 듯하다. 아니면 필자보다도 조금 빠르게 이곳 상주라는 농업도시에 정착하며 눈에 덜 익은 타지에서의 생활은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익숙해지도록 노력하였고 정두영 작가가 젊음을 바친 곳도 이곳 상주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작가이기도 하다.
정두영 작가는 현재까지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고자 했던 화가의 길도 놓치지 않는다.
정두영 작가의 초기 작품은 누구나 다 그러했던 것처럼 사실적 회화이다.
아래 그림은 대학시절 표현했던 초기 작품으로 유화를 처음 시작했던 작품(왼쪽)과 3학년 시절 제작된(오른쪽) 작품이다. 처음 시작했던 작품이라서 그런지 사물에 대한 관찰과 풋풋한 맛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순수함으로 다가온다. 오른쪽 작품은 대학시절 한참 유행하던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에 빠져들던 시기인 듯하다. 철조망과 막힌 벽에서 회색 틈새 사이로 생명이 움트는 초록 사이로 피어난 꽃과 낙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가거나 지켜보고 있음을 느낀다. 작가 자신일까? 당시 시대상황을 표현하려고 했던 것일까? 1985년 즈음일 것이다. 작품의 원본은 작가가 운영하는 정두영 서양화 연구소 간판 옆에 걸려 있다.
1892년 캔버스 위에 유화 1895년 캔버스 위에 유화
아래 작품 역시 대학시절 대학미전에 출품했던 100호 크기의 작품으로 호분이나 흰색 유화물감을 캔버스에 나이프로 밑바탕을 바르고 마른 후 채색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바탕의 거친 느낌이나 오목 볼록한 요철의 질감의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유화용 전문 기름을 많이 섞어 바르다 보면 투명한 바탕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짙은 갈색과 갈색 노랑 계열의 흐름이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시선을 몰아가고 있다. 그 끝은 어두운 판자촌의 끄트머리 그 경계 너머로 노랑과 주황빛이 섞인 하늘이 보인다. 뭔가 거친 삶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896년 ‘골목길’ 캔버스 위에 유화 100호
이후 정두영 작가는 이곳 상주에 정착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실험적이면서도 다양한 표현이 펼쳐진다. 사실적인 표현과 반추상적인 표현 사이를 오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실적인 표현은 평소 누구나 사물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늘 해오던 것이기에 작가라면 한 번쯤 다른 표현의 세계를 추구한다. 정두영 작가 역시 표현의 방향을 반추상의 세계로 들어선다. 반추상은 객관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표현과 추상적인 표현의 중간 사이이다. 사물을 작가의 주관적인 사고로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으로 사물을 단순하면서도 압축되게 보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색채 역시도 작가의 주관에 의해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색채 역시 작가가 사고하거나 사물을 보는 것에 따라 다양한 색의 펼침을 하나의 색으로 통합하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단순화된 색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가 하늘 하면 떠오르는 색은 일반적으로 파랑을 연상하지만 노을이 질 때면 붉은색으로 변하는 것처럼 강한 인상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주관적인 색은 사물이 가지는 고유의 색보다는 인상의 색 혹은 작가가 창조해내는 색이다.
아래 작품들은 정두영 작가가 현재의 수채화와는 다른 재료들을 사용하며 표현한 것으로 사실적인 작품과 반추상의 경계를 오고 가며 수채화와는 다른 그림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캔버스 위에 유화 1
캔버스 위에 유화 2
캔버스 위에 유화 3
캔버스 위에 유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