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공간은 만든 사람 마음의 풍경 같아서 그곳에 들어섰을 때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카페 '버스정류장'에 처음 간 것은 겨울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있는 게 참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여기 누워서 자라면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따뜻한 것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친구 집 같은 곳. 처음 온 사람들도 어쩐지 오래도록 머물러왔던 것 같은 정겨운 곳. 어떤 재미있는 일을 꾸며도 모두 허락될 것 같은 넉넉한 곳이다. 카페 버스 정류장이 들어선 건물은 운이 참 좋다. 잘 어울리는 사람과 부딪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시골에서는 공간을 욕심내도 된다. 잘 찾아보면 내 취향에 맞는 곳을 반가운 가격으로 누릴 수도 있다.

이곳의 면면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 <나의 카페 버스정류장>. 이 장소를 만든 박계해씨의 역사가 조곤조곤 담겨있는 책이다. 읽다보면 이 카페가 더 좋아지고, 이 카페에 머무르다보면 이 책을 읽고 싶어지는 멋진 순환인 것이다.

 

함께 읽을 책/ 나의 카페 버스 정류장,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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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마음을 따라갔어요

 

저는 중학교 교사로 18년을 근무하고 문경으로 귀농했어요. 퇴직금으로 3년을 살다가 어려워져서 옷가게를 7년 운영하고, 이제는 뭘 해볼까 관망하던 때에 우연히 이 건물을 발견했지요. 고향에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지나가는 차창으로 이 집을 본 거죠. 이 집과 한 눈에 사랑에 빠져서 멀어질 때까지 바라봤어요. 어머니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차에서 내렸죠. 창가에 세놓는다고 쓰여 있었거든요. 덜커덕 계약을 하고 왔는데 딸이 또 뭘 저지른 거냐고 했어요. 저에게는 저지르고 나서 수습하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천성이 있거든요. 학교를 그만뒀을 때, 어느 정도 자리 잡았던 옷가게를 그만뒀을 때도 그냥 마음을 따라갔어요.

한 달 동안 이 집을 청소하면서 막연히 카페를 떠올렸어요. 이 장소에는 손님이 이렇게 앉으면 되겠고, 여기는 부엌을 만들어서 바를 하면 되겠구나. 이 벽에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 재미있겠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드는 곳이었어요. 전기 공사, 수도공사, 보일러 공사만 돈을 들인 공사예요. 나머지는 제가 다 했죠.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닦아내고, 페인트칠을 하고, 중고 매장을 찾아가서 적은 돈으로 공간을 채웠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버지니아 울프예요.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초상을 저희 카페 여기저기에 두고, 제가 자는 방에도 두었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명과 약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것에 감동했어요. 그 사람의 초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순화가 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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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버스 정류장의 나날들

 

요즘은 한 달에 한 번씩 노년 모임이라고 55세 이상의 여성들과 모여서 노년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어요.

처음 카페를 열고 강사 초청행사를 종종 했는데 참 즐거웠어요. 그런 행사들을 모두 자비로 하다가 물질적인 것 때문에 또 할지 말지 고민을 하는 게 싫어서 지원사업에 공모를 했고요. 좀 더 마음 편하게 해볼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화요일의 화를 꽃 화자로 바꾸어 <꽃밤>이라는 화요일 행사를 1년 동안 했는데 참 좋았어요. 시인이나 음악가를 초청하거나 마켓을 열고 즐겁게 어울리다가 어떤 때에는 자정을 넘기기도 하고요. 마지막 행사는 <밤소풍>이라는 이름으로 큰 마당이 있는 이웃집에 귀농한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노래도 하고, 국수도 삶고, 지역민들과 함께 돗자리에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한 번은 치매 극복 프로그램으로 글쓰기 수업을 했었는데 할머니들과 고향의 봄부터, 반달까지 동요를 합창했어요. 저희 단골 중에 대금을 잘 부시는 분은 할머니들께 대금을 들려드리고, 단골 시인 분은 할머니들께 시 수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한 할머니는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본인이 쓴 글로 시집을 내셨어요. 손자들에게 명절에 한권씩 주고요. 할머니께서 계속 글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쉬워하셨거든요. 마을 어르신들께는 체조라든지 춤추는 노래교실 같은 것만 하는데 제가 볼 때 할머니들 중에는 글쓰기나 그림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분들도 많아요. 지역에서 그걸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방에 문화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 고마운 사람들

 

카페 버스정류장을 열고 첫 달부터도 월세를 낼 정도는 벌었어요. 다만 제가 처음부터 돈이 없었으니까 마이너스 통장은 늘 저를 따라다니는 너무나 당연한 통장. 그래서 마음이 편해요.  여기서 먹고 살 수 있고, 내 몸을 누이고,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가진 것만 해도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 옷가게 했을 때부터 알던 손님들, 함께 일했던 분들이 고정적으로 카페를 찾아주시고 상주, 함창 동네 분들도 배타적이지 않고 ‘와서 한 잔 팔아줘야지, 이러시고, 집주인아주머니께서도 여기에 손님이 없으면 내가 한 턱 쏠게 하면서 이웃 분들을 데리고 오세요. 사실 저는 누가 팔아주고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응원이 되고 고맙죠. 일부러 차를 타고 멀리 이곳을 찾아주시는 손님들도 너무 고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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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의 가치

 

제가 귀농해서 딴 짓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귀농 학교에서의 제 강의제목이 <귀농, 농사가 전부는 아니다> 였어요. 강의 끝에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귀농을 꼭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좋다고 해서 오셨는데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제가 아무리 귀농이 좋다고 찬양을 해도, 또는 고생스럽고 후회할 거라고 해도 본인의 갈망이 크면 결국 저의 대답과 상관없이 하고야 말 것이고, 또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여기는 자연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것만 해도 굉장한 소득인거죠. 아마 처음에는 자발적 가난이라는 말을 계속 주문처럼 외워야 할 거예요. 내가 원한 가난이다, 이렇게요. 힘들 때 하늘하고 산하고 들판을 바라보고 자주 접하면 이걸 두고 갈 수 없는 뭔가가 생기는데 이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어요.

제가 자는 공간에서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게 보여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 그렸던 갈매기 날개 같은 산 사이로 해가 떠오르고 같은 자리에서 밤이면 달이 떠올라요. 그것만 해도 엄청나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다.’ 나에게 가장 이로운 일이 남에게도 이로울 때 좋은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자기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내가 망가지면 잘못된 거죠. 나를 망가뜨리지 않았을 때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거니까. 나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소중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내 삶이 굉장히 아름다워야 되는 거예요. 내가 가진 재능을 이용하면서 나도 행복하고, 그것이 볼 거리여서든, 읽을거리여서든, 그 사람을 바라만 봐도 아, 저렇게 살고 싶다 하는 모습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하게,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대할 것

 

시골에 와서 어떤 마을에 자리 잡을 때, 사람들의 관심들은 각오해야 해요. 그 분들하고 잘 지내려고 무리해서 애를 쓰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불편함이 있고 멀리 했을 때는 타인처럼 생각하니 겉돌게 되고. 누구나 그래야 되겠지만 정말 진심으로 대하면 어디를 가도 괜찮아요. 진심으로 대한다는 것은 그런 거죠. 우리 엄마 같고 언니 같아서 친절하게 대하고, 마을 어른이니까 그냥 마음으로 좋고, 이렇게 대하는 건 기본이에요. 그러면 시골 어른들은 굉장히 존중하고 좋아해주고 한 개를 드리면 두 개가 돌아와요. 불편한 점이 있을 때에는 말로 표현하는 것도 좋죠. “저는 서울에서 와서 갑자기 집에 오시면 적응이 잘 안되고 지금 할 일이 많아요. 시간표를 가지고 일을 하기 때문에 일하는 데 지장이 있거든요.” 하면 “그렇대더라” 하고 금방 소문이 나요. 시골에 남존여비가 남아있을 거라고 우려 하지만 돈을 버는 여자에게는 약해요. 이 사람이 직장생활을 한다, 이러면 봐줘요. 방해를 안 해요. 집에만 있어도 뭔가 바쁜 일이 있다 이래도요. 저는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농사는 못하고 집을 관리할 여유가 없다고 하면 이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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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버스정류장에서 보내는 초대장

 

저희 카페 주변으로 마을 미술을 하기 위한 목공소가 있고,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시해놓은 공간도 있어요. 이 거리만 해도 예술가들이 왔을 때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되게 많아요. 다 비어있거든요. 이 주변이 그런 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십년 전에 천원 했던 목도장을 아직도 그 가격에 파시는 할아버지, 오래된 참기름 집, 문방구 모두 예술 공간들과 접목되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같고요. 여기 명주 박물관이 가까이 있는데 이 박물관의 축제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보통 지방 축제에는 뽕짝이 나오는데 여기는 재즈가 나오고.  

저와 동갑내기 친구들은 저희 카페 바로 옆집에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했어요. 그냥 이 주변에 예술가분들이 모여 살면서 저희 카페를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공간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만날 사람이 없어도 어색한 게 아니라 낯선 사람하고 한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대화를 틀수도 있고, 반찬 하나씩 해서 이 자리에서 나눠먹을 수도 있고. 한 달에 한 번은 침묵의 날을 하고 싶어요. 아무도 말하지 않고 책을 보거나, 자거나, 듣거나, 글자로 언어를 주고받거나. 말이 사라진 하루를 보내고 싶어요.

 

이곳은 계속 이어집니다

 

저는 우연히 상주를 발견했지만 이것은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이곳이 마음에 들고 괴로운 기억보다 여기 와서 그동안에 살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다 보상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사를 그만둬서 다른 사람처럼 연금을 받지는 못하지만 잘 그만뒀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직업을 바꾸면 여러 가지 삶을 살아보는 거니까 카페 버스 정류장을 해서 좋았어요. 고마운 곳이에요. 상주에는 너무 좋은 귀농자들이 많이 왔어요. 그 사람들에게 자극을 많이 받고 시골에 있는 곳인데도 이곳이 문화적인 공간으로 인식된 것은 손님들의 정신적인 교양 수준, 성품, 이런 것들이 역할을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5년 뒤에 내가 이것을 안 하게 되더라도 이 곳은 남아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와서 이곳을 집필실로 써도 되고, 지역 사람들의 무인 가게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고, 어쩐지 이 공간은 내가 안하고 싶다고 해서 문을 닫아버리는 공간은 아닐 것 같아요. 손님들의 호흡이 이 벽에 다 스며있어서 이 공간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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