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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에 처음 붓을 들어 101세까지 작업하며 국민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 그녀는 장수 비결을 묻는 질문에 “나잇값을 안 하면 된다.”라고 답했다. 그렇지만 사실 그녀는 나잇값을 아주 열심히 하고 살았다. 대부분 스스로에게 치러야 할 값을 잘 정산하면 주변에는 절로 값이 흐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 원하는 것을 할 것, 그 일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원하는 일을 하며 자신을 풍성히 하면 주변을 살필 여유도 생긴다.

 

오유미씨는 공연하고 싶은 인형극을 위해 몇 달이 걸리더라도 정성을 다해 인형을 만들어낸다. 인형극으로 꼬마들에게 지역의 전래 동화를 전한다. 좋아하는 것쯤은 스스로 만들어 가진다. 이어 같은 정성으로 가족을 위해 소박한 물건을 만들어 선물한다.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에 덮어두었던 꿈을 다시 되새긴다. 그것은 아직 끝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으니까,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자연 속에서는 문 밖만 나서도 사랑해서 그리고 싶은 것들이 가득하니까 문제 없다.

 

함께 읽을 책/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크기변환]오유미1.jpg

 

 

살 이유가 있는 곳으로 왔어요

 

저는 상주가 고향이고요 대구에서 직장 다니며 인형극을 하다가 상주로 돌아왔어요. 육아로 인해 쉬었지만 요즘 다시 지역의 스토리로 인형극을 만들어 공연하고 있어요. 전래놀이 강사자격증을 가지고 다놀자 협동조합에서 놀이 강사도 하고 프로그램을 짜고요. 바느질로 저희가 공연에 쓰는 인형이나 집에서 제가 쓰는 소품을 만들기도 해요.

 

도시에 스무 살에 가서 서른 살에 나왔어요. 도시에 처음 갔을 때는 어리벙벙했죠. 차도 버스를 타면 반대쪽으로 가서 한 시간 더 가서 내리기도 하고. 저는 자립심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도시가 좋았는데 점점 무서워지는 거예요. 직장 다니면서 인형극도 배우며 열심히 살았지만 어느 순간 고향으로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 잘 때, 집에 들어갈 때, 밖에 작은 소리가 날 때 모두 무서웠어요. 더는 도시에서 살기가 싫더라고요.

 

고향에 내려오고 나서는 그런 게 없어졌어요. 공기도 안 좋고, 부모님하고도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고 여기 살 이유가 없었어요. 내가 왜 지금까지 여기 살았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저는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란 걸 되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항상 드나드는 들판, 다랑 논이 쫙 펼쳐진 곳을요. 여름엔 싱그럽고 가을엔 푸근하고 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시원하면서 포근했어요. 엄마 아빠보다 고향 산천이 더 그리워했을 정도로 자연을 즐겼어요.

 

저희가 5자매예요. 큰 언니들은 나이터울이 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일찍 집에서 나가 살았지만 동생들 둘이랑 셋이 담벼락 밑에서 공기놀이, 깡통 차기 놀이, 장작을 갖다 주면 뻥튀기 한 줌씩 주니까 그것도 받아먹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열매도 따먹었어요. 여름에는 냇가에서 목욕하고요. 바위에 올라가 뒤로 다이빙하고 앞으로 다이빙하고 뛰어내리기 놀이를 실컷 했죠. 시골의 자연이 주는 게 너무 좋아요. 시골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고는 직장도 그만두기 전에 고향으로 짐부터 먼저 보냈어요. 나머지 한 달 동안 친구 집에 살았지요.

 

[크기변환]오유미씨배경일부.jpg

 

 

시골에서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

 

 

물론 대구에서 공연을 하면 관객들이 많고 호응도 많아요. 시골은 여기서는 호응도, 초청도 잘 없고. 안 좋은 점이 많죠. 저는 고전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공갈못 이야기>, <호랑이와 곶감> 같은 우리 지역에 있었던 전설의 이야기로 만들었는데 요즘은 내가 주제를 너무 좁게 잡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많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제 신념이에요. 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다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요. 제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거든요. 처음엔 너무 무서웠지만 갈수록 너무 좋았어요. 막내를 낳았을 때 어머니 연세가 81세였거든요. 그런데도 아기를 너무 좋아해주시고 많이 돌봐주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는 치매를 앓게 되어 아기가 되셨죠. 인형극이 시골에서 세대 간의 매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엄마, 아기가 모두 나와 서로 사랑을 나누고 그 안에서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인형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옛날의 이야기, 지역의 이야기로 공연을 해요.

 

하지만 나 자신도 완벽하지 않고 동료들도 초보이다 보니까 작품성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 올라와요. 서울이나 부산 워크샵에 참여하며 배우러 다니기도 하지만 더 전문성을 가지고 싶어 아쉬운 점이 있죠. 이곳에는 대본 써주시는 분들도 드물고, 음향 해주시는 분들도 찾기 힘든 점이 있어요. 하다 보니 점점 더 잘하고 싶은데 그걸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가끔 도시에 인형극하는 분들과 교류하고 같이 공연 보며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제작하는 것은 경상북도나 국가의 보조금을 받고 있어요. 그런 게 되게 많이 도움이 돼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데 자기 돈으로 해야지, 라는 사람도 있지만 제작하는 데 돈이 많이 들거든요. 성우, 작곡, 대본, 차 두 대로 용품들을 실어야 공연을 다닐 수 있고요. 공연 연습장, 공연장, 사무실 하나 운영하기도 어렵거든요. 다행히 인형 용품들을 생활 문화 센터의 창고에 보관할 수 있어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장점은 도움을 받지 않으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만들 수가 있어요. 누구의 비위를 맞추거나 할 필요가 없어요. 대신 협조자를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래도 시골은 품앗이가 통하는 것 같아요. 해달라고 하면 새벽에 전화해도 해주시고. 나도 그 분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있으면 최선을 다해 해주고. 인심이 통해요. 얼마 전에 음향하시는 분을 알게 되었어요. 목소리 좋으신 분들도 알게 됐고 컴퓨터 봐주는 사람도 알게 되어서 기뻐요.

 

저는 처음 상주에 와서 인형극을 하고 싶었을 때 무작정 예총을 찾아갔어요. 내가 인형극을 하는 사람인데 여기서도 인형극을 하고 싶다,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돈을 지원해주고 만들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마침 전교조에서 인형극 요청이 와서 그 공연 준비를 하며 인형을 만들게 되었어요.

 

지역에서 예술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실망하지 말고 어디든 가서 이야기해보세요. 그게 먹힐 때가 있거든요. 한 번 안 됐다고 포기하지 말고요. 문경에도 인형극 오페라 하우스가 생겼어요. 그게 사실은 말한 지 10년 후에 받아들여 진거예요. 처음에는 관심 없다가 나중에 그 역이 폐역이 되면서 인형극 극장으로 쓰라고 리모델링을 해주었어요. 지방에서 예술을 하고 싶은 뜻이 있으면 이곳저곳에 타진을 해보고 지역 담당자들이나 어른들에게 말해보세요.

 

[크기변환]오유미인형극.jpg

 

 

인형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

 

작품을 위해 저희가 직접 만든 인형이 2,30개 정도 있어요. 혼자 바느질해서 만든 것도 있고, 부탁하면 옆에서 붙여주고 꿰매주는 것을 도와주시기도 하고요. 종류가 여러 가지예요. 한지 인형, 솜인형. 상주를 대표하는 캐릭터 꼬까미 인형은 발도르프 인형을 응용해서 만들었어요.

 

폐자원을 활용해서 양말, 타이즈 안에 솜을 빵빵하게 넣어 꼭 묶고, 실로 여러 번 감아 얼굴을 만들어 그 위에 원단을 한 번 더 씌워 다시 마무리해요. 꼬까미 머리에 감꼭지를 붙이고 몸통을 만들어 붙이고 옷을 지어서 만들어 입혀요. 눈은 지점토로 만들어 아크릴 물감으로 색칠하고 코와 입도 바느질해서 붙여요

 

어떤 인형은 하드 스펀지를 깎아서 사포로 맨질 맨질하게 만들어 몇 번 천을 씌우고 본드칠을 꼼꼼하게 해서 마지막 피부를 만들죠. 관절도 다 따로 만들어 노끈으로 연결해요. 눈은 탁구공을 4등분해서 아크릴 색칠, 코팅해서 얼굴에 집어넣은 후 속눈썹을 붙여요. 그렇게 인형을 만드는 일에만 세 달 걸려요. 공연을 보는 분들은 공연비가 비싸다고 느끼실지 몰라도 그 이전에 들이는 정성도 고려해주시면 좋겠어요. 힘들어도 인형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것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인 것 같아요.

 

[크기변환]오유미수작업.jpg

 

 

소박하게, 내 손으로

 

상주는 감이 익어가는 과정이 아름다워요. 길에 홍시가 많이 떨어져있어요. 아침의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집에 떨어진 홍시 한 개씩 주워 먹어요. 저는 평범하게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게 좋아요. 있는 그대로 잔잔한 행복을 느끼면서 내가 키운 것을 따먹는 것이 좋아요. 호박전이 먹고 싶으면 알맞은 게 익었을 때 따먹고, 밖에 나가서 오이랑 토마토랑 고추 따오고.

 

도시에서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할까 생각하며 살았는데 시골에서는 그런 게 오히려 더 적죠. 남의 시선을 바라고 사는 것이 아니니까 내 멋대로 사는 거죠. 낭비 없이 편하게 살 수 있어요. 원하는 물건을 갖기 위해 일하고, 찾아보고, 사러가기까지 시간이나 열정이 많이 들잖아요. 바느질을 좋아해서 원래 제 물건을 그냥 만들어 사용하고는 했어요. 간단한 옷을 만들어 입고, 가방이나 손지갑을요. 그래서 10년 전에 집이 어려웠을 때는 제 바느질로 돈을 벌기도 했고요.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못하지만 그 때 바느질을 더 익히게 되고 지금은 수업도 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처음에 옷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전에 남편 옷과 내 옷을 커플로 만들어봤어요. 퀼트용 광목이 되게 부드럽더라고요. 그걸로 남편이 입던 옷 펴놓고 신문지로 패턴을 그려서 옷을 만들었어요. 한참 걸렸죠. 한 달. 흰색이 심심해서 염색을 할까 했지만 그냥 두고 붉은 실로 자수를 놓았어요. 엄마가 재봉틀을 잘하셨는데 초등학교 때 엄마 창고에 있는 재봉틀을 혼자 해봤어요.  자투리 천을 오려 인형을 만들었어요. 팔다리가 가늘고 길쭉한 인형을 만들고 옷도 만들어 입혔어요. 우리 오빠는 어릴 때 소나무 껍질을 칼로 깎아서 배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칼로 깎아서. 만드는 것에 대한 기쁨, 요즘은 사서 입는 게 훨씬 쉽고 저렴하지만 만든 물건들에게는 하나하나 소중함이 느껴져요. 저는 팔목이 닳은 옷을 못 버리겠어요. 오래 입은 옷에 더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져요. 옷을 많이 만들면 새로 짓느라 지구 에너지가 들어가고 폐기할 때도 에너지가 들어가니까 안 좋죠.

 

저는 자급자족이 꿈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소박’이거든요. 자기가 필요한 거 만들어서 입고, 먹고 싶어요. 여기서 애들 학교 갔을 때 엄마들도 뭔가 배우러 가요. 그릇도 만들고 접시, 주전자, 도마, 책상, 의자, 이불, 옷, 베게 만들어서 써요. 도시에서는 지금보다 시간이 오히려 많았는데 그냥 나중에 그렇게 살아야지, 라고만 생각만 했죠.

 

요즘은 그림을 그려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부모님은 미술 대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셨지만 제가 중학교 때 미술부 활동을 해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 스스로 그만두었어요. 집에 형제들이 있으니 돈 들어갈 곳이 많았거든요. 나중에 상주로 귀촌하고 난 뒤에 다시 그림을 시작했어요. 도서관에서 그림 그리는 프로그램을 통해 계속 수채화를 그렸어요. 수채화가 이 시골풍경과 잘 어울리게 맑고 깨끗하니까요. 나이 들어서 가장 마지막으로 할 일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크기변환]오유미그림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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