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그 해 전주영화제에서 본 최고의 작품이었다. 방 안에 식물을 가득 키우며 찾아온 이에게 옛 추억을 되살리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마법의 차 한 잔을 대접해주는 마담 프루스트. 그녀에게는 식물과 차가 삶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모두 갈 곳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아름다운 것이 잔뜩 모인 곳이라면 더할 나위없다. 손가락을 걸어 호로록 마시고 싶은 아름다운 찻잔으로 가득한 잡화점 <베키의 작은 지구>에 머무르다보면 그 영화가 떠오른다. 나에게는 책으로 가득한 곳이 아름다운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찻잔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빵이겠지.

장화를 신고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생명을 기르다가 베키의 작은 지구라는 공간에 들어오면 또 다른 차분한 자신으로 돌아오는 분을 만났다. 스스로 원치 않았던 시골에 와서 얄궂은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풍경이 어떻게 비로소 아름다워졌으며, 잔뜩 움츠렸던 생활은 어떻게 다시 부드러운 활기를 얻었는지, 꽃과 과일향이 가득한 차와 함께 나눈 이야기들.

 

함께 볼 영화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감독 실뱅 쇼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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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에서 상주까지 

 

모로코 주재원 생활을 할 때 에사웨라에 출장을 갔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어요. 이제는 조직 생활을 접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그리고는 사표를 던졌어요. 그 때가 30대 후반.  저는 집 앞에 풀도 많던 독일에 있을 때 잔디도 안 깎던 사람이 무슨 시골에서 풀 뽑고 농사를 짓느냐고 했죠. 남편이 전에 그런 말을 했을 때에는 설마 가겠어, 라고 생각하고 건성건성 답했는데 진짜 그만둔다고 하니까 그 때는 올 것이 왔구나, 이제 정말 올 것이 와서 그냥 가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모로코에서 귀농 준비를 6개월 했어요. 상주 귀농 귀촌 센터에 전화해서 우리가 해외에 있고 인수인계가 끝날 시점이 몇 개월 뒤인데 그 때 가서 귀농 교육을 받아도 되겠는지 여쭤봤어요. 모로코에서까지 전화했으니 극성맞다고 했을 거예요.

그 후 남편은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러 한국으로 먼저 떠나고 제가 애들 셋을 데리고 두바이를 거쳐서 한국에 왔는데 몸이 너무 아픈 거예요. 남편이 바깥에 풍경을 보라는데 앙상한 겨울  나무들 밖에 없는 거예요. 안 보려고 눈감고 다녔어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시골에 간다고 하니까 상주에 백화점 있나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여기 와서 2년 가까이 사람들과 왕래 없이 혼자 지냈어요. 아이들은 낯선 환경에 대해서 적응을 잘 했지만 저는 못 견디겠더라고요. 이곳의 문화라던가 그런 것들이.

그러다가 어느 날 밭에 일손이 부족한데 좀 도와줄 수 없냐고 연락이 왔어요. 그 때 양파를 심을 때였는데 귀농 동기들이 도와달라고 하고 지역민도 도와달라고 하고. 밭일을 해본적도 없는 나에게 얼마나 급하면 연락이 왔을까 생각하고 나간 게 시작이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마을 도서관에도 왕래를 하다가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시간 될 때 가서 다른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어요.

시골에 2년 가까이 별 일 안하고 있다가 나왔는데 이곳에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여기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해요. 주중에는 농사를 짓고, 토요일에는 베키의 작은 지구를 운영하고, 공동체 학교 식당팀 일도 해야 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가을에는 감을 깎고 겨울에 생강을 거두는 일로 일 년이 끝나요. 곶감 일도 2년인가를 했더니 조금 할 줄 안다고 겨울에 그 시기가 되면 연락이 오고요. 한 사람을 알게 되면 한 사람을 빌미로 열 사람 안에 백사람이 있고, 백사람 안에 천 사람이 있고,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이 다 좋아요. 상주여서가 아니라 시골 생활 자체가 사람들의 말에 힘들 때도 있는데. 사람들의 말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 활동 범위가 너무 좁아져요. 누가 내 생각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데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나는 잘 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뭘 해도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으니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힘 얻어서 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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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키의 작은 지구로 오세요

 

이곳은 사람들이 오시면 커피 한 잔 내려서. 사람들이 부부싸움 하거나 고민거리가 있거나 한 번 털고 싶을 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해요. 동네 언니들이 싸우고 나서 바깥에 춥거나 더워도 운동장 돌고 집에 가야되고, 그렇게 갈 데가 없다는 말을 듣고 갈 데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 마을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작은 마을 도서관이었어요. 뜻이 있는 분들이 이곳을 만들어 마을의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씩은 마을 잔치를 해요. 돼지도 한 마리 잡아 돼지 국밥도 만들고 벼룩시장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도 하고요. 벼룩시장을 하려고 물건을 모으는데 하루만 하고 물건을 또 창고에 넣는 게 번잡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상설로 하고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가져가고 가지고 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게를 만들려면 누가 이것을 운영할 것이며 집기도 필요하고 자금도 필요하데 그것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문제였어요. 위치가 좋고 중요한 환경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요. 이곳은 농산물 직매장 할 때 행사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였는데 이곳을 제가 정리 하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 이곳을 반만 쓰고 1년 동안 지켜보기로 하셨어요. 재작년 6월달에 오픈하고 2년이 넘었고 지금은 정착을 했어요. 처음에는 옷들만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왔을 때 즐거운 거리가 또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내가 미칠 정도로 좋아하면 남들도 반은 좋아해주겠지. 라는 생각으로 남편이 모로코 주재원 생활 할 때 재미삼아 그곳을 탐방하며 모았던 진귀한 물건들을 들여놨어요. 이 물건들에는 제가 모을 때의 이야기도 담겨있어요. ‘이것은 어디에 갔을 때, 그 사람과 이렇게 흥정해서 샀던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드리면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물건이 팔려 볼거리가 없어지면 사람들에게 줬다 뺏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판매한 돈을 다른 그릇이랑 바꿔요.

 

엄마는 작은 지구에 가야 돼

 

시내에 가게를 차리자는 제안도 들었는데 시골의 정서에 맞는 가격이 있어요. 이 가게를 좋아해주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가격이 되려면 임대료처럼 지출되는 게 없어야 하는 거예요. 이 학교는 후원금으로 이루어지는 곳인데 다행히 제가 후원금만 내고 여기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하게 해주니까 내가 이곳을 즐기고 다른 분들도 편안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시내에 가면 판매가 조금 더 잘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이 공간을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이걸로 돈을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농사를 짓는 저에게도 일주일에 허락된 귀한 하루잖아요. 저에게도 베키의 작은 지구가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휴식 공간이 되기도 해요.

만약 작은 지구가 없었다면 계속 불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이곳만 운영한다면 마음이 불편하겠죠. 남편이 저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남편을 도와서 농사를 지어야 할 것 같아요. 다급할 땐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농번기 때 베키의 작은 지구로 제가 오면 남편도 속으로는 싫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여기는 제가 이제 2년 동안 문을 닫은 적이 한 두 번 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남편도 제가 힘들 때나, 어디 가야할 때 오늘은 문을 닫으라고 해요. 그런데 그냥 가야하는 곳이다, 라고 정해놓으니까 이제는 합의가 된 것 같아요. 우리 와이프는 토요일에 작은 지구에 가야해, 우리 엄마는 작은 지구에 가야 돼, 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내가 하는 일을 가족들에게 인정받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시골이 정말 예뻤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였냐면 

 

도시 아이들은 그냥 손만 뻗으면 버스와 택시가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밥을 먹고 자전거를 타서 내려가고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버스가 오는 곳까지 오솔길을 걸어가야 해요. 그 구불구불한 길에 농부가 모를 심고, 모가 자라고, 익고 수확하는 모든 활동을 아이들이 다 보게 되는 거예요. 한 번은 그 길을 올라오는데 진심으로 감탄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벼들이 너무 예뻐, 벼 익는 색감이 너무 예뻐. 벼가 익을 때는 들판이 아름다워요.”

그 때 이런 맛에 시골에 사나보다 생각했죠. 저는 만날 아유 저 풀때기, 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아이들의 눈으로 풍경을 저에게 다시 일깨워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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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대한 부담감이 해소될 때

 

그게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는 것 같아요. 베키의 작은 지구를 운영하고 환경학교 활동을 하며 사람들로부터 치유 받는 게 있어요. 처음에는 공동체? 내 것을 뺏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이기적으로 나는 안 해요, 라고 딱 잘라서 거절한 적도 있었어요. 그걸 반복하다가 앞에서 희생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을 받으면 나도 내줘야 하지 않나, 라는 게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전염도 되고, 학습도 되고. 자급자족 백원장을 만들 때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을 선두 주자로 나서서 한길로 걸어 이뤄낸 사람들도 있고. 이 환경 학교도 사람들이 와서 떠들고 활동하고 배워갔으면 하는 마음만 있었지 실제로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 보면서 칭찬을 하잖아요. 그럼 안 그래, 언니 안 그래, 하고 쑥스러워 해요.

 

이곳에 머물게 하는 힘.

 

귀농하러 오시는 분들이 환상을 가지고 오시면 오지 말라고 해요. 그냥 제 생활을 이야기하죠. 우리가 도시 생활을 다 청산하고 왔는데 손에 쥐고 왔던 게 지금은 이렇게 밖에 없어. 그런데 돈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으면 여기가 도시보다 백배나 천배나 좋아. 다른 지역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기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상주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좋아. 지역 선택을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외서가 그런 면에서 정말 좋아요. 환경 학교가 있고 백원장이 있고 로컬 푸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가 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거듭나니까. 만약에 건강을 찾으러 오겠다고 하면 그것도 오케이, 조금 더 헐렁한 공동체를 지향을 하고 내가 내 생활을 방해받지 않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곳이기는 한데 그조차도 싫다면 그것도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막 외치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를 들으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저처럼 공동체를 몸소 보여주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되면 옆에서 받아들이게 되죠.

이곳에 머물게 하는 힘은 사람이죠. 귀농한 사람들이나 지역민들 모두 적당히 잘 어울려서 사는 것 같아요. 남편 같은 경우에는 농사 같이 짓는 형님들이 너무 좋은가 봐요. 부르면 신나가지고 달려가요. 그리고 떠난다고 해도 대안이 없잖아요. 다른 곳에 가도 그곳의 문제가 있어요. 도시는 폐쇄적이지만 이곳은 오픈되어있고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니까 덜 외롭죠. 사실 외로울 시간도 없고요. 할 일이 너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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