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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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우리 삶은 오히려 단순해졌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필요한 일 대부분을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생계를 잇거나, 집을 짓거나, 옷을 만들거나 거의 집 안에서 했습니다. 손이 필요하면 상호부조를 통해 동네 안에서 문제를 풀었습니다. 환경은 훨씬 단순했지만 필요를 직접 해결하려니 삶과 일에는 다양성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집 짓기는 고사하고 아이들이학교에 가져갈 찰흙도 문구점에서 사야 합니다. 수많은 일 중에서 돈 버는 한 가지를 빼고 직접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분업을 통해 공장을 효율화한 방식과 유사합니다. 직업으로 돈을 벌고 나머지 일은 모두 외주로 해결하는 삶입니다. 인생을 외주 줬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겨우 남아 있는 스스로 하는 일이라야 취미로 여가를 즐기는 정도인데 이마저도 대개 돈을 써서 남에게 의존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만 이런 구조 덕분에 우리는 참으로 많은 문명을 누리고 삽니다.

 

이러나저러나 돈이 있어야 하루하루 생활이 가능하니 될 수 있다면 많이 챙겨 두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거의 만능의 열쇠라 더 가지려 다툽니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니 돈 벌기가 참 어렵다고 합니다. 돈 안 되는 일이라면 피하기 마련입니다. 시간을 재미 없는 돈벌이에 쓰고 지쳐서, 가끔 돈 안 되는 여가에 많은 돈을 쏟아 붓는 모습은 상당한 모순 같습니다. 시각을 바꾸어 보면 돈 벌기는 어쩌면 쉬운 일인지 모릅니다. 자신의 일상을 모두 스스로 해결하느니 돈 벌어 남 시키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돈에 묶여 있는 일자리를 싫어하면서도 포기하고 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드물게 틀을 벗어나 사는 사람은 기인입니다. 돈 벌기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원하는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체로 다다익선, 많이 벌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뿐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잘 따지지 않습니다.

 

2014년 우리나라 일인당 GDP가 약 삼천만 원(약 28,000달러) 정도입니다. 보통 여기에 가족 수를 곱해 그 정도는 벌어야 평균이라고 생각합니다. 3인 가정이라면 구천만 원, 4인이라면 일억이천만 원이겠습니다. 실제론 GDP가 100% 모두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이 계산은 틀립니다. 정부의 지출 부분 등 개인 소득이 안 되는 비중(나라마다 다르나 대체로 GDP의 20-40%)를 빼면 3인 가족에 대략 육천만 원가량입니다. 전체 인구 중 약 2/3가 일을 하므로 세 명 중 두 사람이 일해 버는 소득이라고 봐야 합니다. 2014년 임금노동자 평균 월급이 320만 원, 2인 이상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420만 원이니 참고가 되겠습니다. 한편 같은 통계에서 소득이 있는 사람의 약 1/3인 천만 명 정도가 연봉 천만 원 미만으로 나옵니다. 보는 사람의 환경에 따라 생각보다 적게 번다거나 반대로 많이 번다거나 느낌이 다르겠습니다. 어쨌거나 통계로 보는 숫자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을 뿐.

 

소득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판단할 때 이 평균적인 벌이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가 중요하겠습니다. 2인 이상 가구 평균 월급 420만 원은 일 년이면 오천만 원입니다. 우리나라 가구당 가족은 약 3명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한 가구에 세 명이 살며 두 명이 일 해 오천만 원 벌면 평균이라고 해석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숨겨진 소득이 많은 나라인지라 실제 소득은 더 높겠지만 기준은 이 통계값으로 해야겠지요. 식구 중 두 명이 일 하고 총소득이 이 정도라면 어떤 느낌인지요? 한 사람 벌이로는 보통이고 두 사람의 소득이라면 너무 적다는 느낌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부부가 일 년 내내 일하고 이 정도 벌면 평균 언저리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람마다 2300시간 정도 일해서. 양극화, 불평등을 모두 해소해서 똑같이 나눌 때 우리가 얻는 소득입니다. 근래에 기업 소득이 급증했기 때문에 노동자 몫이 상당히 더 있겠지만 평균값을 크게 올릴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경제 지표에서 세계 10-30위 정도에 있으니 우리가 국가 경쟁력을 더 키워서 소득을 늘린다는 생각은 무리라고 봐야 합니다. 구매력 지수로 본 우리의 2013년일인당 GDP는 35,000$ 수준으로 독일과 거의 비슷합니다. 분석하는 기관마다 순위가 약간씩 다른데 대략 25-30위 사이에 있습니다. 명목상 GDP도 순위로는 이와 비슷합니다. 세계 상위10-15% 수준입니다. 허리띠 더 졸라 매고 경쟁력을 키워서 나중에 나누자는 주장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순위에 든 뒤에 뭘 하자는 의미라 실현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우리는 상대적 기준을 따질 때 더 벌기 쉽지 않은 위치에 있습니다.

 

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편인데 우리는 왜 늘 부족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돈을 잘 못쓰기 때문입니다. 써야 할 곳과 말아야 할 곳을 잘 못가립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우선 분배가 공평하지 않습니다. 양극화가 심해 절대적인 부족을 느끼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소득을 올리는 전체 인구 중 1/3인 천만 명 정도의 소득이 일 년에 천만 원 이하니 대단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결핍을 느끼는 비율 또한 아주 높습니다. 상위 10%가 자산의 70% 가까이 차지하며, 매년 소득의 50% 정도 가져갑니다. 하위 50%가 다투는 재산과 소득은 2% 남짓입니다. 소위 능력에 따른 자유로운 경쟁을 하면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50% 인구가 겨우 2% 미만을 가지고 다투는 나라입니다.

 

교육과 주거에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점도 큰 이유가 되겠습니다. 수많은 전시행정 사업과 비리, 비대한 국방비 예산과 비리 등이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소위 선진국들은 이런 분야에 낭비성 예산이 적습니다. 복지를 통해 생활의 최저선을 지켜 줍니다. 개인이 임금 중 개인 생활에 전용할 수 있는 비율이 당연히 높습니다. 직업 간, 계층 간 임금의 차이도 적어 불필요한 경쟁을 덜 하고 협력하는 상승효과를 얻습니다. 그렇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는 정확히 반대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많은 예산이 낭비되어 필요한 곳에 쓰이지 않습니다. 투기로 비싸진 집을 정상적으로 돈을 모아 장만할 수 없습니다. 줄 세우기 경쟁에서 이겨야 하니 하루하루가 전쟁터입니다. 모두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사교육에 투자하는 비용이 놀랄 정도입니다. 평균적인 벌이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출이 그저 보통인 사회입니다. 적당한 벌이가 있어도 구조적으로 늘 부족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대개 죽도록 노력해 부자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OECD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길고, 독일보다 평균 1.5배 가까이 일하는데 더 일해서 우선 더 성장하자는 논리가 우세합니다. 2020년을 바라보는 시기에 1970년 시절의 가치관입니다. 다단계 피라미드 사업이 불가능한 신기루이듯 아무리 애써도 모두가 부자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경쟁하기 때문에 한 명의 부자가 생긴 그늘에 열명백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쟁 자체가 실질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역기능도 합니다. 기득권층은 능력을 길러 부자가 되는 일은 가능하고 나누어 함께 잘 사는 길은 불가능하다고 선전합니다. 개인 수준에서 후자는 어쩔 수 없는 영역으로 보고 전자는 그나마 노력으로 가능한 길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언론에 수많은 성공담이 올라옵니다. 같은 능력에 같은 노력을 했을 경우 대체로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얻는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백 중 하나만 성공해도 그렇게 살아야 성공한다며 결과론을 펼 뿐입니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면 무한경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자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분배가 제 기능을 하면 모두가 상당히 잘 사는 구조는 얼마든지 됩니다. 노동의 종류에 따른 차별을 줄이면 소모적인 경쟁은 크게 줄어듭니다. 평균을 넘게 버는 사람들이 더 많은 소득을 위해 잔업, 특근으로 여가를 희생하지 않고 즐기는 삶을 지향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장인 평균 노동 시간을 줄이면 생산성이 올라가거나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최소한 실업을 해소하고 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효과는 생깁니다.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이 덜 벌고 덜 일하는 대가입니다. 더 많이 일할 명분이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없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적게 벌어도 생활이 어렵지 않은 구조를 만들면 적절하다 생각하는 소득 기준이 낮아집니다. 적절하게 분배하고 복지를 확대하면 됩니다. 고소득자들과 기업의 세금을 늘리고 부동산 보유세를 올리면 유럽과 비슷한 무상 교육, 무상 의료, 주거 안정을 미래가 아닌 우리 당대에 바로 이룰 수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당연히 적절한 몫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노동조합들이 때에 따라 파업을 불사하며 임금과 처우의 개선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다른 노동자들의 처우에 무관심하다면 그런 정당성은 빛을 잃습니다. 정규직 노조에서 자신들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기 전에 사내의 비정규직을 똑같이 대우하라는 조건을 먼저 내세우기 불가능할까요? 지금 현실에선 총생산량 중 노동자 몫을 제대로 받자는 싸움보다 노동자 간의 차별이 너무 심하니 그 격차를 줄이는 일이 훨씬 급한 문제 아닐까요? 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임금 인상의 기준을 사회 전반에서 어느 정도인지 따져보고 비정규직의 임금과 조정해볼 여지는 없을까요? 이런 논의를 현안으로 내놓지 않는 노조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연 민주적이라 규정할 수 있을까요? 농민들의 소득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임금 인상만을 기대하는 노조가 민주적일 수 있을까요? 분배와 복지가 모두 정권과 커다란 조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비슷한 물음을 개인 생활에도 던져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 내가 덜 일하면 실업이 줄고 분배에 도움 된다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능한 것을 불가능한 것으로 비틀어 놓은 시각을 바로 잡자는 이야기로도, 불가능해 보여도 바람직한 일이라면 가능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뜻으로도 보입니다. 가능하다는 것의 불가능성을 깨닫고 불가능하다는 것의 가능성을 꿈꿔야 하는 시절입니다. 시골에 사니 적게 벌어도 되는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집 장만에 큰 돈이 들지 않습니다.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가 적게 듭니다. 이웃과 품을 나누어 해결하는 일들이 조금은 있습니다. 대충 대도시에서 필요한 생활비의 절반이면 되는 듯합니다. 그 절반의 절반에도 모자라는 농가 소득이 정말 큰 문제인데 일을 더 하거나 잘 하자는 방식은 합리적인 답이 아닙니다.

 

합리적으로 따져 보면 쉬운 일도 사회에서 구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권력이 작동하는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개개인의 뜻은 갈라지기 쉽습니다. 대의 정치 구조에서는 대표자를 뽑는 선거가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다가오는 2016년 봄 국회의원 선거가 있습니다. 농민이 인구로는 얼마 안 되지만 선거의 방향을 결정 짓는 중요한 한 축입니다. 이번엔 개인의 이해관계를 좀 미루고 공정한 기회와 분배를 지향하는 투표를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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