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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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尙州) 백화산 옥문곡(玉門谷)과 건천 옥문곡(玉門谷)에 관한 小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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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5(卷第五) 신라본기(新羅本紀) 제5(第五) 선덕왕(善德王) 기사에 실린 “옥문곡(玉門谷)” 전투는 삼국유사 ‘기이’ 편에 소개될 정도로 많은 의혹과 함께 세간에 회자되었으며 “옥문곡(玉門谷)” 전투의 현장으로 추정된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여근곡(女根谷)’은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 “옥문곡(玉門谷)”이라 칭하였으나 동일한 지명 미상으로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일(卷第一) 기이(紀異) 편(篇)의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 에 근거하여 비슷한 뜻을 가진 ‘여근곡(女根谷)’으로 추정된 것이다.

그런데 삼국통일의 전초기지였든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소재 ‘백화산(白華山)’의 소개 ‘증보 상주문화유적 p50’에 ‘옥문곡 골짜기’가 거명되며 ‘상주시청-상주의 문화유산-금돌성’ 안내에도 역시 ‘옥문곡 골짜기’가 거명된다.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여근곡(女根谷)’의 위치 추정 과정을 거론하며 상주 백화산 ‘옥문곡 골짜기’가 유래된 연유에 대하여 근원을 파악해 역사의 향기를 채워보고자 하는 소박한 생각으로 이 글을 쓴다.

 

Ⅱ. 먼저 “옥문곡(玉門谷)”이란 지명이 역사서에 소개된 유래는,

1.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5(卷第五) 신라본기(新羅本紀) 제5(第五) 선덕왕(善德王)

 

新羅本紀 第五 善德王

 

夏五月 蝦蟇大集宮西玉門池 王聞之 謂左右曰 蝦蟇怒目 兵士之相也 吾嘗聞西南邊 亦有地名玉門谷者 <其><或><有><隣><國><兵>(其或以下六字 意補) 潛入其中乎 乃命將軍閼川<弼><呑><率><兵><往><搜><之>(弼呑以下七字 參照遺事及通鑑 以補之) 果百濟將軍于召欲襲獨山城 率甲士五百人 來伏其處 閼川掩擊盡殺之

 

夏五月 여름 5월에

蝦蟇大集宮西玉門池 궁궐(宮闕)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두꺼비(蝦蟇)들이 떼로

모였다.

王聞之 임금이 그 사실을 듣고서

謂左右曰 좌우(左右)를 보며 가로되

蝦蟇怒目 "두꺼비(蝦蟇)들의 부릅뜬 눈(怒目)은

兵士之相也 병사(兵士)들의 모습(相)이다.

吾嘗聞西南邊 내가 일찍이(嘗) 들으니(聞) 서남쪽 변경(邊境)에도

亦有地名玉門谷者 옥문곡(玉門谷)이라는 지명(地名)이 있다고 한다.

其或有隣國兵 혹시(或) 이웃나라 병사(隣國兵)가

潛入其中乎 그 안으로(其中) 몰래 들어오지는 않는가(潛入乎)?"라고 하셨다.

乃命將軍閼川弼呑 이에(乃)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命)하여

率兵往搜之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곳을 수색(搜)하게 하였다.

果百濟將軍于召 과연(果) 백제(百濟) 장군(將軍) 우소(于召)가

欲襲獨山城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려고(欲襲)

率甲士五百人 갑옷 병사(甲士) 5백 명을 거느리고

來伏其處 그곳(其處)에 와서(來) 잠복(伏)해 있었다.

閼川掩擊盡殺之 알천(閼川)이 기습공격(掩擊)하여 모두(盡) 죽였다.

 

2. 三國史記 卷 第二十七 百濟本紀 第五 武王

 

百濟本紀 第五 武王 37

 

三十七年 夏五月 王命將軍于召 帥甲士五百 往襲新羅獨山城 于召至玉門谷 日暮解鞍休士 新羅將軍閼川將兵 掩至擊之 于召登大石上 彎弓拒戰 矢盡爲所擒

 

37년(636) 여름 5월에 장군 우소(于召)에게 명령하여 갑옷 입은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가서 신라의 독산성(獨山城)을 습격하게 하였다. 우소가 옥문곡(玉門谷)에 이르러 날이 저물자 안장을 풀고 사졸들을 쉬게 하였다. 신라 장군 알천(閼川)이 군사를 거느리고 엄습해 와서 이를 쳐서 무찔렀다. 우소는 큰 돌 위에 올라가 활을 당겨 막아 싸웠으나 화살이 떨어져 사로잡혔다.

 

3.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일(卷第一) 기이(紀異) 편(篇)의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

 

善德王知幾三事 선덕왕(善德王)이 미리 안 세 가지일

 

二 두 번째 이야기

於靈廟寺玉門池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서

冬月衆蛙集鳴三四日 겨울철에 뭇 개구리들(衆蛙)이 모여 3-4일 동안 울었다.

國人怪之 나랏사람(國人)들이 괴이하게 여기고

問於王 임금에게 물었다.

王急命角干閼川弼呑等 임금이 급히 각간(角干)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명하셨다.

鍊精兵二千人 "정예(精銳) 군사 이천 명[을 이끌고]

速去西郊 급히 서쪽 근교(近郊)로 가서

問女根谷 여근곡(女根谷)이 [어딘지] 물어보라.

必有賊兵 반드시(必) 도적나라의 군사(賊兵)들이 있을 것이다.

掩取殺之 기습해서(掩) 죽여라(取殺之)."

二角干旣受命 두 각간(角干)이 이미 명을 받들어

各率千人問西郊 각각 군사 천 명을 이끌고 서쪽 교외(郊外)에 가서

물었다.

富山下果有女根谷 과연(果) 부산(富山) 아래에 여근곡(女根谷)이 있었다.

百濟兵五百人 백제(百濟) 군사 오백 명이

來藏於彼 그곳에 와서 숨어있었다(藏).

竝取殺之 [알천, 필탄이] 함께 백제군을 죽였다.

百濟將軍亐召者 백제(百濟) 장군(將軍) 우소(亐召)라는 자가

藏於南山嶺石上 남산(南山) 고개바위(嶺石) 위에 매복해 있었다(藏).

又圍而射之 또한 그를 포위하여(圍) 화살로 쏴 죽였다.

又有後兵一千三百人來 증원군(後兵) 1,300 명이 더 오자

亦擊而殺之 그들 역시 쳐서 죽였다.

一無孑遺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4. 동사강목(東史綱目) 제3하

 

병신년 신라 선덕여주 5년, 고구려 영류왕 19년, 백제 무왕 37년(당 태종 정관 10, 636)

 

하5월

백제가 장군 우소(于召)로 하여금 신라 독산성(獨山城)을 습격케 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살해되었다.

백제왕이 장군 우소에 명하여 갑사(甲士) 5백을 거느리고 신라 독산성을 습격케 하였다. 때마침 신라 궁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하마(蝦蟆 두꺼비과에 속하는 개구리 비슷한 양서동물)가 많이 모이니, 주(主)가 좌우에게 말하기를,

“하마의 노한 눈은 병사의 상(象)이니, 생각건대 서남 변읍(邊邑)에 인병(隣兵)이 이르렀을 것이다.”

하고, 장군 알천(閼川)을 명하여 가서 수색케 하였더니, 과연 우소가 해 저물녘에 말안장을 풀고 병사를 쉬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알천이 엄습하여 공격(攻擊)하니, 우소는 바위 위에 올라가서 활을 쏘아 막아 싸웠으나 화살이 다 떨어져 사로잡혔다. 주(主)가 기뻐하여 비단 2백 필을 하사하였다.

 

이와 같은 기록들이 역사서에 전하나

 

첫째, 독산성(獨山城)의 위치와 관하여 현재 지명 위치가 미상이나 ,

 

사적 제140호인 경기도 오산시 세마대길 94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5번지 일대)와

‘양원왕(陽原王 고구려 제24대 왕) 三國史記 卷 第十九 四年 春正月 以濊兵六千 攻百濟獨山城 新羅將軍朱珍來援 故不克而退 秋九月 丸都進嘉禾 遣使入東魏朝貢

584년(재위 4)에 동예(東濊)의 병사 6천명을 이끌고 들어와 백제(百濟)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장군 주진(朱珍)이 와서 내원하므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는 기록을 참조하여 충북 충주와 괴산, 상주 등으로 추정하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도 오산, 충북 충주, 괴산, 경북 상주 등을 침공하는데 왜 경주 건천에 매복하였는지 사리에 맞지 않고, 성주의 독용산성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伽泉面) 금복리에 있는 산성.)을 비정하나 이도 위와 같이 위치 상 부합되지 않는다.

 

둘째, 지리적으로 신라의 수도라 할 경주와 지척의 거리인 건천에 겨우 갑사 오백의 군사로 신라의 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매복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당시 신라에는 김유신(金庾信), 알천, 품일, 천존, 진주 등 기라성 같은 장군들이 즐비했고 당시 경주를 수호할 압량군(경산) 총관으로 (庾信 爲 押梁州 軍主) 김유신 장군이 존재했다는 사실로 보아 오백의 병사로 적진 한 복판을 뚫기는 어렵다.

그리고 지금도 고속도로 등에서 돌출되는 위치에 있는 훤한 지역(건천 여근곡)에 매복을 한다는 것은 전략상 상식 밖의 이야기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又有後兵一千三百人來 亦擊而殺之 一無孑遺

증원군(後兵) 1,300 명이 더 오자 그들 역시 쳐서 죽였다.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 고 했는데 백제에서 겨우 1,300명의 증원군이 대구, 영천을 뚫고 경주까지 온다는 것은 전략상 무모한 허구에 불과할 것이다.

 

셋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夏五月 여름 5로 여름 절기가 나오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冬月衆蛙集鳴三四日:겨울철에 뭇 개구리들(衆蛙)이 모여 3-4일 동안 울었다.’ 라고 전혀 다른 계절을 묘사한다.

하면, 삼국유사(三國遺事) ‘富山下果有女根谷:과연(果) 부산(富山) 아래 여근곡(女根谷)이 있다.’ 라는 점에서 건천 여근곡(女根谷)으로 추정된 배경에도 의문이 간다.

 

이러한 사실은 후대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쓴 시에도 언급된다.

점필재집 시집 제2권 [시(詩)]

 

옥문곡을 지나다. 일명은 여근곡인데 사실이 삼국사에 실려 있다.

[過玉門谷一名女根山事在三國史]

 

얕은 골에 어떻게 적병을 숨길 수 있으랴 / 淺谷何能伏敵兵

옥문이라 천재에 부질없는 이름 들었네. / 玉門千載謾爲名

주민들이 다투어 기미 아는 일을 말하여 / 居民爭說知幾事

부질없이 장수가 길을 돌아가게 하였구려. / 空使元戎枉道行

 

이처럼 이 이야기가 역사의 전면에 부각된 배경은 신라는 성골신분이 아니면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성골이 선덕여왕밖에 없어 최초의 여왕이 탄생할 수 있었고, 이런 여건 속에서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이었지만 여성으로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당 태종의 무례한 발언은 그 한 예를 보여준다. 당 태종은 군사를 요청하러 간 신라의 사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善德王

帝曰 爾國以婦人爲主 爲隣國輕侮 失主延寇 靡歲休寧 我遣一宗支(支,冊府元龜作枝) 與(與,同書作以)爲爾國主 而自不可獨王(王,同書作往) 當遣兵營護 待爾國安 任爾自守 此爲三策 爾宜思之 將從何事

"그대 나라는 부인(선덕여왕)을 임금으로 삼아 이웃나라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 이는 임금을 잃고 도적을 맞아들인 격이므로 앞으로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왕가의 종친 한 사람을 보내어 그대 나라의 임금으로 삼되, 혼자서 살아 갈 수는 없을 것이므로 군사를 보내 보호해 줄 것이다. 그런 뒤에 나라가 편안해지면 그대들에게 맡겨서 스스로 지키게 하겠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는 선덕여왕을 무시하고, 왕을 갈아치우라는 반란을 부추기는 발언이기도 했다. 결국 이런 발언이 빌미가 돼 상대등 비담이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선덕여왕(善德女王)의 답변(答辯)이다.

 

蛙有怒形 兵士之像 玉門者女根也 女爲陰也 色白白西方也 故知兵在西方

男根入於女根 則必死矣 以是知其易捉 於是 群臣皆服其聖智

 

‘개구리(蛙)의 성난 모습(怒形)은 병사(兵士)들의 모습(像)이다. 옥문(玉門)은 여근(女根)이다.

여자는 음(陰)이니 그 색(色)은 흰색(白)이고 흰색은 서쪽(西方)의 색이다.

그러므로(故) 서쪽에 군사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남근(男根)이 여근(女根)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必) 죽는다(死). 이런 이유(以是)로 적들을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군신(群臣)들이 모두 임금의 성(聖)스러운 지혜(智)에 감복하였다(服). ‘

 

선덕여왕은 이런 전투를 두고도 성적(性的)인 수치감을 버리고 자신의 음부(陰部)를 두고 설명해야 할 만큼 여성으로서 임금 노릇을 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뛰어난 예지(銳智)를 가진 임금이라는 것을 ‘옥문곡(玉門谷)전투’를 통해 널리 알리고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이 전투의 승리는 첩보내용 덕택이었을 것이다.

 

 

5. 다시 “옥문곡(玉門谷)”이 유래되는 역사서를 보면

 

新羅本紀 第五 眞德王

 

三月 百濟將軍義直 侵西邊 陷腰車等一十餘城 王患之 命押督州都督庾信 以謀之 庾信於是 訓勵士卒 將以發行 義直拒之 庾信分軍 爲三道 夾擊之

遂簡練州兵赴敵. 至大梁城外, 百濟逆拒之. 佯北不勝, 至玉門谷. 百濟輕之, 大率衆來, 伏發擊其前後, 大敗之, 獲百濟將軍八人, 斬獲一千級.

 

삼월 백제 장군 의직이 서쪽 변방을 침공하여 요차성 등 십 여성을 함락함에 왕은 병을 얻고 압독주독 유신에게 이를 물리치라 명하고 유신은 훈련된 병사들을 데리고 의직을 맞아 세 갈래 길로 군사를 추격하여 적진으로 갔다. 대량성 밖에 이르니 백제가 역습으로 대항하였다. 그는 일부러 이기지 못하는 척 패주하여 옥문곡에 이르렀다. 백제는 그를 얕잡아 보고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왔다. 그 때 복병이 일어나 백제군의 앞뒤를 공격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백제 장수 8명을 사로잡았으며 1천 명의 목을 베었다.

 

三國史記 卷 第二十八 百濟本紀 第六 義慈王

 

七年 冬十月 將軍義直帥步騎三千 進屯新羅茂山城下 分兵攻甘勿 桐岑二城 新羅將軍庾信親勵士卒 決死而戰大破之 義直匹馬而還.

八年 春三月 義直襲取新羅西鄙腰車等一十餘城 夏四月 進軍於玉門谷 新羅將軍庾信逆之再戰 大敗之.

 

7년 10월에 장군 의직(義直)이 보병과 기병[步騎] 3천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무산성(茂山城) 아래로 나아가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감물성(甘勿城)과 동잠성(桐岑城) 두 성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유신(庾信)이 친히 군사를 격려하여 죽기를 결심하고 싸워 크게 깨뜨리니 의직은 한 필의 말을 타고 혼자 돌아왔다.

8년 3월에 의직(義直)이 신라의 서쪽 변방의 요거성(腰車城) 등 10여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4월에 옥문곡(玉門谷)으로 군사를 나아가게 하니 신라 장군 유신(庾信)과 싸워 역습으로 대패했다.

 

(의직(義直, 590년에서 600년 사이[1]~660년)은 백제 의자왕 때의 장군이다. 그의 이름이 역사책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647년이다. 그는 3000명의 군사로 신라가 점령하고 있던 무산성(茂山城)을 함락시킨 뒤, 다시 감물성(甘勿城)등을 공격했으나 김유신에게 크게 패하였다.

648년 다시 신라를 공격하여 요거성(腰車城) 등 10여 성을 빼앗았으나 옥문곡(玉門谷)에서 김유신에게 거듭 패하여 1천여 명이 전사하였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오자 좌평으로 2만의 군사를 데리고 가서 기벌포에서 맞섰지만 13만 대군의 소정방을 이기지 못 하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백제 장군 의직 (百濟 將軍 義直)이 ‘요거성’을 공략하다 했는데 ‘요거성’은

 

新羅 - 10代 奈解尼師今

 

秋七月 百濟來攻國西腰車城 殺城主薛夫 王命伊伐湌利音 率精兵六千伐百濟

破沙峴城

(추칠월) : 가을 7월, 백제가 서쪽 지방 요거성을 공격하여 성주 설부를 죽였다.

왕이 이벌찬 이음으로 하여금 정병 6천을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였고 사현성을 격파하였다.

 

백제 - 초고왕(肖古王)

 

十一年 甲午 七月 攻羅腰車城 拔之 斬其城主 羅兵來侵沙峴城 而退

 

11년(A.D.274) 갑오 7월 신라 腰車城(요차성)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그 성주를 참수하였고, 신라의 병사가 沙峴城(사현성)을 침략하여 왔으나, 후퇴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요거성(요차성腰車城)과 사현성의 위치는 확실치 않으나 이병도의 ‘국역 삼국사기 p27 에는 상주의 요제원(要濟院)일대인 듯하다.‘ 고 하였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오늘의 괴산(槐山)지방으로 보는 이도 있다. 신라와 백제는 2세기에서 3세기 말엽까지 경북 상주, 문경지방에서 많은 싸움을 하였으나 5세기에 와서는 고구려의 남진으로 소백산맥은 삼국의 싸움터가 된다.

백제 동성왕 8년에 우두성(牛頭城:청양의 우산성)을 쌓고 12년에 북부의 15세 이상의 장정을 모아 사현성(沙峴城:예산의 신양면)과 이산성(耳山城:예산의 이산군)을 쌓아 고구려의 공격을 대비한 것이다.

 

이하 요차성은 위치 미상이나 경북 상주 혹은 충북 괴산으로 추정되는바 진덕왕 때 百濟 將軍 義直이 보병과 기병(步騎) 3천 명으로 신라의 무산성(茂山城-무주로 추정) 아래로 나아가 주둔하고, 군사를 나누어 싸운 감물성(甘勿城-김천)과 동잠성(桐岑城-경북 구미 혹은 충북 충주) 전투에서 대패한 다음 해에 다시 와신상담하여 요거성 등 십 여성을 공략했는데 김유신의 유인작전으로 경주 건천 ‘옥문곡(玉門谷)’까지 와서 패했다는 기록은 싸움의 양상이 무주, 김천, 상주등지로 이어지는 시점에서 경주 인근 건천으로 옮겨가는 이해하지 못할 전투상황이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선덕왕 때의 전투 진격로 및 공략 과정과 유사하여 똑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할 것이다.

 

1. 선덕왕 : 백제의 독산성 (경북 상주 혹은 충북 괴산) 공격 - 백제의 옥문곡(玉門谷) 매복

2. 진덕왕 : 백제의 요거성 (경북 상주 혹은 충북 괴산) 함락 - 신라의 옥문곡(玉門谷) 유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권지(卷之)28 상주목(尙州牧) 명신조(名臣條)의 “新羅金庾信眞德王時 伐百濟論功 增秩伊餐爲上州行軍大摠管”을 참조하면 김유신은 이 전투로 인하여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으로 승차하여 현 경북 상주(尙州) 인근을 총괄하는 대총관이 되었으니 상주의 중요성과 ‘옥문곡(玉門谷)’ 전투와 연관성이 있지 않나 유추해본다.

 

맺는 말

 

‘옥문곡(玉門谷)’을 현재 경주 건천 옥문곡(玉門谷) 으로 추정하는 것은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쓴 시에도 언급된 ‘얕은 골에 어떻게 적병을 숨길 수 있으랴. 淺谷何能伏敵兵’ 등 위치 추정에 많은 무리가 있고,

“증보 상주문화유적 p50’에 ‘옥문곡 골짜기’와 ‘상주시청-상주의 문화유산-금돌성’ 안내” 및 기타 자료에 언급되는 ‘금돌성’은 모동면 사무소로부터 서쪽으로 약 6km 지점인 백화산에 있고 주위 총연장 20km에 달하며 요소요소에 성의 무너진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상주는 신라시대 북방 경략을 위한 군사요지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특히 백제와는 더욱 더 많은 지역이 연접되어 있어서 서역은 항상 접전지가 되어 있었다.

삼국사기나 동국여지승람 등에 의하면 백제가 신라를 침략함에 진덕왕 때 김유신장군을 상주행군대총관으로 삼아 백제를 격파하였고 무열왕 때에 이르러는 왕 7년 6월에 태자에게 명하여 대장군 김유신은 품일, 흠춘 등과 더불어 5만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하고 왕은 ‘금돌성’으로부터 소부리성에 이르러서 제감 천북을 당나라로 파견하여 전승을 알렸다는 것이다.

이 기록상의 ‘금돌성’과 무열왕이 행차한 곳이 현지의 전설이나 현 읍지인 <중산지>의 기록과 현지 조사에서, 모동 백화 산성이 바로 금돌성이라는 추정이다. 이곳 산성을 세분하면 석문, 내외 성지, 옥문곡 대궐터, 창터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옛날에 신라에서 백제로 가려면 상주를 거쳐 이곳 수봉리 넓은 들을 지나 고개를 넘었다고 하는데 바로 그 고개가 지금도 문바우라는 이름으로 전해오며 이 고개만 넘으면 곧 황간 땅이다. 상주시에서 갈방장터를 지나 대포리(모서면)를 거쳐 소정리(모서면)를 지나면 대지가 약간 높아지고 다음 동리인 솔미부락부터 평원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 평탄한 길로 배골(배울) 선천을 거쳐 수봉리를 지나면서 약간 언덕진 길을 올라 문바우고개를 넘게 되니 차도가 개설되기 전의 구로였고, 신라시대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 등을 감안하여 현재 보문곡(普門谷, 寶門谷)으로 지칭되는, 무열왕이 백제 공략 때 진주한 대궐터 주변이 ’동사강목(東史綱目) 第4上 庚申 又遣法敏與 庾信 及 將軍品日欽春 師精兵五萬應之 進次今堗城(今尙州白華山) 참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옥문곡(玉門谷) ‘이 아닌가 추정해본다.

 

선비의 고장이고 옥동서원이 있는 백화산 인근에서 옥문(玉門)이란 지명을 사용하기에는 난감하여 후일 “入口의 門”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속명(俗名)으로 보문(普門, 寶門)이라 개칭하지 않았는지 추정된다.

 

여자의 음부(陰部)을 뜻하는 옥문(玉門)의 어원(語源)은 "볻"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여자의 성기(性器)를 "볻"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푸티(PUTI), 즉 음문은 니제르 코르도판, 나일 사하라, 아프리카 아시아, 우랄 유카기르, 드라비다, 오스트로, 아메린드, 그리고 인도 유럽어족에서 나타난다.

니제르 코르도판어족 말링케어(Malinke)의 "부투"는 "음문"의 뜻이다. 나일 사하라어족 가오어(Gao)의 "부티" 역시 "음문"의 뜻이다. 아프리카 아시아어족에서도 헤브루어의 "포트", 차드어파 제구어(Jegu)의 "파테"가 모두 "음문"을 뜻한다.

우랄-유카기르어족의 오스탸크어(Ostyak) "푸티"는 직장(直腸)을, 드라비다어족 툴루어(Tulu)의 "푸티"와 오스트로어족 아미어(Ami)의 "푸키"는 "음문"을 나타낸다. 아메린드어족에서는 야마나어(Yamana)의 "푸타"가 "구멍"을, 과히보어의 "페투"와 자리쿠나어(Jaricuna)의 "포이타"가 질(膣)을 뜻한다.

그리고 인도 유럽어족의 경우 고대 프랑스어의 "퓌트(pute)", 현대어 "퓌텡(putain)"은 "매춘부"라는 뜻이다.

(잃어버린 문명, 제2장 조어(祖語)에서-http://kr.blog.yahoo.com/pjs1329/2322 )

덧붙여 말하면 영어(英語) 속어로 여자의 음부(陰部)는 "푸시(pussy)"다.

 

이와 유사한 뜻에서 옥(玉)을 보(普,寶) 등으로 개칭하여 보문(普門, 寶門)이 아닌지도 유추해본다.

 

또 三國史記卷第三十四. 雜誌. 地理一.

 

新羅疆界,

 

本國界內置三州, 王城東北當唐恩浦路曰尙州, 王城南曰良州, 西曰康州, 於故百濟國界置三州

 

本國 境界內에 三州를 두니, 왕성[王城] 東北(西北의 오[誤])쪽으로 당은포[唐恩浦](화성군[華城郡] 남양면[南陽面]) 향로[向路]에 당하는 곳을 상주[尙州](본시는 사벌주[沙伐州])라 하고, 왕성[王城] 南쪽을 양주[良州](본시는 삽량주[揷良州]), 西쪽을 강주[康州](본시는 청주[菁州])라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속집(續集) 제7권 지리고(地理考) 7 신라(新羅)

 

양나라 원제(元帝) 2년(553)에 신라가 또 지금의 한양(漢陽), 이천(利川) 등지를 취하였는바, 신라의 서쪽과 북쪽 경계가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사이로 끼어들어가, 북쪽으로는 고구려와 삼각산(三角山)을 경계로 하였고, 서쪽으로는 안산(安山)의 앞바다까지 닿았다.

 

《통전》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신라의 서쪽과 북쪽 경계는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 끼어들어가 있다.

 

《고려사》 열전

 

당시에 신라에서 당나라와 통하는 길은 매번 당은포(唐恩浦), 당항성(棠項城) 등지를 경유하는데, 당은포(唐恩浦)는 바로 남양부(南陽府)이고, 당항성은 바로 안산군(安山郡)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성읍조(城邑條)에 나온다.

그렇다면 신라의 서쪽과 북쪽 경계는 충주, 이천에서 안산, 남양의 바다에 이르는 지역으로,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王城 東北은 西北의 誤記인듯. 이와 같이 방향이 잘못 표기된 부분이 삼국사기에 많다. 이로 인해 해석의 차이가 많음을 참조.)

 

王城東北當唐恩浦路曰尙州,

 

이 사실로 보아도 상주(尙州)는 경주, 상주, 충주, 이천, 당항포(남양부:南陽府)로 연결되는 신라와 당과의 중요 교통로였고 주요 전쟁터의 현장이었을 것이다.

 

금돌성이 무열왕이 백제를 공략할 때 한 달여간 몽진한 주요 산성이었고 그 아래 ‘구수천 팔탄’을 따라 약 6km에 달하는 하천 양안으로 석축한 옛길이 폭 3m 정도로 과반 정도 남아있고 이를 기병들의 말 타는 조련장으로 쓰였다는 구전을 감안하면 삼국통일의 기초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전초기지로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摠管)으로 김유신이 임명된 이전이나 이후에도 신라, 백제의 중요한 거점으로 보여 진다.

 

‘頂上部로부터 左. 右를 에워싼 稜線을 따라 축성한 石城의 全長은 실로 20km 內. 外가 된다고 하니(?) 그 거창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성곽의 형식은 內城과 外城으로 구별하였는바 白華山 어구에 外城을 쌓고 城門을 마련하였으며(현재는 그 門址라하여 무너진 석재만이 산란하다.) 이 外城은 門址인 협곡의 좌 ․ 우 절벽 능선을 따라 넓은 범위로 축조되었다. 內城은 外城에 들어와서 “보문곡(宝門谷)”에 접어들면 시작되는데 좁은 계곡을 출입문처럼 중앙에 두고 그 양쪽 비탈에 쌓아서 “대궐터”를 중심하여 백화산 상봉 쪽으로 올라갔으며 이 城 줄기는 산 정상부에서 外城과 합치고 있다. 그러므로 “대궐터”에서 보면 이곳을 중심하여 이중으로 에워싼 석성의 윤곽이 뚜렷하다.

산 정상부 능선의 성곽이 가장 잘 남아있어서 星峰, 內苑山, 恨城峰 등 諸峰의 성 위를 따라 일주할 수 있는데 “宝門” 뒤쪽의 능선에는 “북문지(北門址)”라 하여 北쪽 출입구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곽의 정상부인 恨城峰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동쪽으로 牟東, 牟西 너머로 상주시내 건너 멀리 淵岳山(甲長山)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壽峰里가 바로 눈 아래에 보이며 멀리 黃澗, 추풍령 쪽이 굽어보인다. 그리고 서쪽은 옥천 너머 대전 땅이 멀리 짐작되며 북쪽은 보은 땅이 바라보인다. 과연 이곳은 이 지역에서는 가장 主山이 되는 동시에 사방을 지키고 또 지배할 수 있는 천연적인 조건을 구비한 요새임을 현지 조사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 는

’'상주(尙州) 백화산(白華山) 금돌성(今突城)의 歷史的 考察-鄭永鎬 (단국대:檀國大) 석좌교수(碩座敎授) ‘ 논문에 보듯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성(城)이 아니다.

 

충북 보은에 있는 삼년산성(三年山城)에 대하여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는 기록을 참조하더라도 장성(長城)의 금돌성은 쌓는데 수년이 소요되었을 것이고 위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 권제5(卷第五) 신라본기(新羅本紀) 제5(第五) 선덕왕(善德王) 기사에 실린 “옥문곡(玉門谷)” 전투와 新羅本紀 第五 진덕왕(眞德王) “옥문곡(玉門谷)” 전투는 이를 두고 공방전을 벌린 역사가 아닌지 짐작해본다.

 

또 백화산 금돌성 아래 대궐터를 산 건너편 봉화 터에서 볼 때 ‘Y’ 자 형태가 완연하여

“入口의 門”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속명(俗名)으로 불려온다는 구전과 유사한 점이 옥문(玉門)의 지명 유래가 아닌지 유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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