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환순 칼럼

상주 청소년인생학교 쉴래 이야기Ⅰ: 산골소녀 우영, 청소년인생학교 ‘쉴래’를 만나다.

by 상주소리 posted Feb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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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입학도 비평준화지역이어서 시험을 치르고 명문고를 찾아다닌다는 이곳 상주에서 청소년인생학교 ‘쉴래’가 열렸다. 한국사회의 교육적인 변화에 중간도 미치지 못하는 상주가 아니었던가. 그런 상주에서 경인지역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전환기교육이 시도되고 급기야 1년 동안 운영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숨쉬기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탈출하려는 절박한 움직이었을까. 그렇게 가장 척박한 교육의 불모지 상주에서 청소년들의 인생을 고민하는 쉴래가 펼쳐졌다.

 

 무슨 복인지 쉴래에 우리 집의 큰 아이가 참여했다. 18세의 우영이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홈스쿨러인데, 그래서 더욱 자신의 미래에 고민이 많았다. 꼭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두렵고 막막한 상황이었다. 엄마가 고민을 같이 한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미숙하고 감정적인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나 우영이에게는 쉴래가 거의 행운의 탈출구와도 같았다.

 

 우영이는 첫 모임에서 쉴래를 통해 자신의 고민들을 정리하면서 미래를 찾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밝혔다. 전환기교육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쉴래는 학생이나 운영진, 부모 모두에게 첫사랑 같은 것이었다. 처음이여서 모든 것이 서툴고 조심스러웠지만, 오히려 그래서 모든 과정이 새롭고 설레고 즐거움이었다. 호기심 많은 우영이는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몇 가지를 추려서 생각키우기, 목공수업, 몸만들기, 바리스타 수업, 포토샵 배우기, 만화수업 등을 공부했다. 다양한 수업을 통해 스스로 몰랐던 자기의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말하는 방법,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 자기만의 표현 노하우를 키우는 방법, 사람들과 무언가를 공유하는 방법, 새롭게 사고하는 방법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쉴래의 일 년을 보내면서 우영이의 일상도 조금씩 바빠지고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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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래는 아이가 중심이고 아이의 인생을 같이 고민하는 곳이다. 그래서 청소년 인생학교라고 부른다. 이곳은 일반 학교와 달리 학생보다 선생님이 더 많은 곳이다. 학생 자신을 위해 지역의 사람들이 같이 고민하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에게 행복한 공간이다.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재능을 기부하여 아이가 원하는 내용들을 나누어준다. 그래서 쉴래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은 사회적인 배움이다.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내는 것을 배운 아이는 당연히 또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배움을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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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영이는 쉴래에서 커피를 배웠다. 원두를 볶는 것도 배우고, 라떼를 만들기도 하고, 향과 맛을 조금씩 구별하면서 집에 오는 손님들에게 많은 시간 실습을 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백원장에서 자봉을 해야겠다고 한다. 엄마가 차를 태워주기에는 바쁘다니까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리면 백원장까지 카풀하는 방법도 다 찾아 놓았단다. 거리도 너무 멀고 하루 종일 힘들텐데 괜히 의무감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해도, 그저 자신이 재미있어서 하는 거란다. 자기에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르쳐주셨는데, 선생님이 바쁠 때는 당연히 도와드리는 게 좋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밤늦게 도착한 아이는 흥분되고 즐거웠던 그날 하루를 한참동안 조잘거리며 쏟아내곤 했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생각키우기를 통해 말하는 법과 글 쓰는 법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나서는 모동면 지역신문의 창간을 고민하기도 한다. 전문적인 글씨기와는 분명 수준차이가 있겠지만 청소년 자신의 눈으로 지역을 관찰하고 또 고민하면서 그것을 정리하는 일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하반기에는 쉴래 운영의 문제점을 살며시 제안해 어른들을 머쓱하게도 만들고, 다양한 행사의 준비과정에도 한 몫을 담당하는 일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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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청소년인생학교 쉴래를 일 년 동안 지냈다고 하지만, 우영이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또 이어질 것이다. 대학진학이나 구체적인 진로에 대해 아직 명쾌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일 년 후 이 년 후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뭔가 딱 꼬집어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겼다고도 하니 아마 몸과 맘이 조금은 단단해진 모양이다.

 

 어쩌면 우영이에게 청소년인생학교 쉴래는 무언가를 배우는 곳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인생 멘토들을 만나고 교류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영이의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그런 멘토들을 만난 곳이다. 뭘 해야 할지 막막하고 두려운 인생의 골목길마다 자신에게 등불을 밝혀주는 그런 멘토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을까 싶다. 아마 전국의 청소년 인생학교가 교류한다면, 우영이의 인생 멘토들은 전국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언제든지 우영이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전국에 존재한다. 얼마나 신기하고 즐거운 상상인가. 나의 딸이기에 부모로서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우영이가 부럽기도 한 이유이다. 너의 인생에 건투를 빈다.

 

<상주 청소년인생학교 쉴래 이야기 Ⅱ>에서는 쉴래를 통한 부모의 성장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박환순

모동면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

산골에서 내공 깊은 아줌마가 되어, 인생에서 힘든 순간 멘토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음.

타로를 통해 마음의 고민들을 풀어주는 취미가 있음.

 

hwansu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