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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경찰, 살인정권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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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볼 일이 있어 금요일 광주에 갔다가 토요일 아침 7시 30분 광주시청 앞에 나갔다.

거기서 전교조 전남지부 선생님들과 함께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광주시청 앞에는 전세버스들이 수십미터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차량 번호가 24번을 보았다. 그것도 한 직종의 버스였다. 경북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인지도 모른다.

8시쯤 출발하였는데 거의 2시가 되어 서울남대문에 도착했다. 단체별 모임을 갖고 2시에 시청앞에 모여 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최근 그동안 여러 집회에 왔으나 이렇게 운집하기는 처음인 듯 했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만큼 요구가 절실하다는 말이고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말이고 그만큼 여러 부문들이 총출동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디 시청 앞에만 모였는가? 몸을 두 쪽 낼 수 없어 가지 못한 대학로에는 세월호 관련 집회가 열리고 있고 청년학생들이 운집해 있을 것이다.

못가는 섭섭함은 잠시 후 4시가 되면 모두 광화문에서 만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노동자집회를 마치고 조직별로 다른 코스를 행진해 광화문을 향했는데 모든 곳이 원천봉쇄 되어 있었다. 우리가 진입하려고 했던 서대문 쪽 통로도 이미 차벽과 경찰차로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가운데 불법집회니 물러나라는 경찰의 경고 방송, 그리고 이어 앞장 선 선두대열에는 물대포가 쏘아졌다. 그래도 꼼짝 않으니 켑사이신을 투하하겠다는 엄포 방송까지 했다.

우리는 아까운 물 농촌의 논밭에나 뿌리라는 야유를 하며 버티었지만 뚫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하고 다시 동아일보 앞으로 행진을 했다.

이미 오후 6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일부 대오는 무너지고 우리는 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 위해 앉아 있었다. 몇 몇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 버스를 끌어내는 밧줄을 붙들고 힘을 쓰다 다시 돌아오곤 했다. 연신 물대포가 날아가고 그 억수같은 물폭탄 속에서도 굽힘없이 타격이 이루어졌는데 한참 만에 안쪽에서 구급차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웅성거리며 뭐냐고 누가 다쳤냐고 의문했지만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농민 한사람이 물대포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며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안고서 9시 경에야 서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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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현실이란 말이 어제오늘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정권의 탄압이다. 이미 사용이 불법이 된 차벽을 세우고 처음부터 시위민중에게 무지막지한 물대포를 직사했다. 이런 차단은 시위군중뿐 아니라 언론사 보도기자에게도 적용되었다. 누구라도 차벽 가까이만 오면 바로 직사포를 날린 것이다. 총이 있었으면 총도 그대로 쐈을 것이다.

불법을 막아야 할 경찰이 불법을 자행하며 정당한 집회를 불법으로 몰아세우는 나라- 이런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마음이 처참해진다.

이명박은 광우병 촛불 집회장의 촛불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우리의 박근혜대통령은 누가 얼마나 모여 무슨 말을 해도 꿈쩍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 독단과 아집에 경찰도 알아서 굽신거리며 충성을 하자니 이런 탄압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이 준 권력을 국민을 향해, 국민의 심장에 폭탄을 겨누고 터뜨리는 이 나라 경찰.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국민의 이름으로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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