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공동대표
2015.10.18 22:07

[나는 농부로소이다]그날 상주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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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상주에서 무슨 일이?

또 그날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옥의 티라고나 할까? 그날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았고 상주시, 경상북도에서도 많은 배려를 했는데 생각 없는 보도 자료 하나가 거슬렸다.

 

크기변환_백화산 항몽대첩탑.jpg

 

 

육군본부 발행 군사연구소 편집의 육군전사에도 “고려, 몽골 전쟁사- 이러한 큰 승리가 겨우 승전 사실 정도만 간략히 전하는 것은, 상주산성에서의 전투가 순수한 지역민들의 자위적 항전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간과되고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중세학회 회장을 역임한 공주대 윤용혁 교수는 “지방 민중항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논문에서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주시는 2013년 5월 20일 백화산항몽대첩탑 준공식을 가지며 ‘관민이 힘을 모아 싸운 전투’로 가볍게 보도 자료를 날렸고 이후 이를 인용한 기사나 글들은 문제의식 없이 모두 관민이 합심한 전투로 민중항전이란 용어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크기변환_그림1.png

 

 

十月戊子, 車羅大 攻尙州山城, 黃嶺寺僧 洪之, 射殺第四官人,士卒死者過半, 遂解圍而退

"10월 무자, 몽고장수 차라대가 상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황령사의 승 홍지(洪之)가 제4관인을 사살하고 사졸의 죽은 자도 반이 넘자 드디어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1254년 10월19일 해가 뜨는 땅에서 해가 지는 땅까지 거칠 것이 없었던 칭기즈 칸의 몽골은 상주 백화산을 포위하고 공방전을 벌이다 네 번째 고급 지휘관이 사살되고 병사 과반수가 넘게 죽자 퇴각했다는 것이 고려사가 전하는 짧은 글이다.

황령사의 승 홍지(洪之)가 지휘관으로 묘사된 것으로 봐서 피난민과 승려들이 정예 몽골군을 맞아 죽기 살기로 싸운 이룬 전과임이 분명하다.

 

백화산 저승골.jpg

 

저승골 안내문.jpg

 

‘저승골, 저승문, 저승폭포. 전투갱변. 방성재.’

험한 계곡의 대명사가 된 ‘저승골’로 유인된 몽골군은 자연의 지형으로 형성된 ‘저승문’으로 몰려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간신히 살아남은 병사들은 또다시 초겨울 빙벽을 이룬 ‘저승폭포’로 나뭇잎처럼 흩날렸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은 병졸은 힘을 다해 ‘구수천 팔탄’ 차디찬 물길을 건넜지만 반대편 ‘전투갱변’에서 매복하고 기다린 상주민들의 매서운 칼날에 패퇴하여 방성통곡하며 ‘방성재’를 넘어 후퇴하자 이날을 되새긴 지명들이 지금까지 유전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적의 지휘관 지랄타이(車羅大)가 ‘한(恨)을 남긴 성(城)’이라고 명명하여 백화산의 최고봉이 “한성봉(恨城峰)"으로 불려오다 후대에 어감이 좋지 않다 하여 한자명을 ”한성봉(漢城峰)으로 바뀐 유래가 전해올까?

상주산성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함이었을까?

 

이후 몽골군은 경남 산청까지 남하하며 사로잡은 남녀가 무려 20만 6천 8백여 명이나 되었고, 살육된 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며, 거쳐 간 고을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 몽고 군사의 난이 있은 이래로 이보다 심한 때가 없었다고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是歲蒙兵所虜男女,無慮二十萬六千八百餘人,殺戮者不可勝計,所經州郡,皆爲煨燼,自有蒙兵之亂,未有甚於此也

 

이런 전투(윤용혁 교수의 글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해전에 버금가는 상주산성대첩)를 기리기 위해 작은 비라도 세우고자 추진한 결과 지역 주민과 출향인사들이 4천 칠백만원의 기금을 모아주었고 상주시와 경상북도에서 적극 호응하여 비보다 탑을 세우는 것이 낫다하여 7억여 원을 들여 조성된 상주 백화산항몽대첩탑이 백화산 입구에 작은 공원과 함께 조성되어있다.

 

그런데 황령사의 승 홍지(洪之)는 그날 이후 역사에서 사라졌다.

처인성 전투의 승려 출신 김윤후가 명예스럽게 역사서에 계속 존재하는 것과 비교해도 너무 간략하다.

단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당시 고려사에 전하는 몽골과의 협상 과정이다.

백성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피신한 고려 정권은 전투에서 이기고도 사죄하는 뜻으로 승리한 지휘관들을 적에게 인도하거나 참수하고 바다에 수장했다.

이를 한심하게 여긴 몽골군이 ‘우리에게는 역적이나 너희에게는 충신이 아니냐? 살려두라.’고 만류하여 살아난 지휘관도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생사를 건 전투 현장에서 차라대가 주둔한 곳에 술과 과실과 폐백을 주었다 는 내용이 고려사에 간혹 나오는 걸 봐 백성을 유린하는 적을 술과 안주로 달래는 고려 정부의 유약함을 알 수 있다. (至車羅大屯所,贈酒果及幣.)

그리고 상주산성의 근거가 된 백화산 금돌산성이 (20km, 6-7km 등 지표조사 때마다 다르지만) 기반이 산성임을 구별할 뿐 지진이라도 난 듯 성벽 주변에 다 무너진 것이 고려가 항복한 이후 적의 근거지였다 하여 강화도에 쌓은 성을 스스로 무너트려라 하여 동원된 백성들의 통곡이 산하를 울렸다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문화재청과 상주시 홈페이지에는 금돌산성은 1254년 무너졌다. 라고 적혀있다.

다행스럽게 몇 년 전 답사 때 높은 암벽 위에 70m 정도 원형 그대로 남은 성벽을 발견하여 당시 모습을 재현할 수 있지만.......

이런 전후 경과를 비교하면 상주산성 전투 이후 항복하다시피 신하의 예로 무릎을 꿇은 고려는 어제의 나라를 구한 충신을 몽골에게 아부하기위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대국을 상대한 역도로 몰아 ???

 

수년전 백화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시름을 달래려고 쓴 글이다.

 

홍지(洪之)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그를 못 잊어

타임머신 타고

팔백년 전 그날로

시간 여행 떠났다.

 

홍지 스님

이승의 마지막 보내는 날이다.

 

몽고 적장 차라대는

이제 무릎 꿇은 신하의 나라 고려에

참패를 당한 분풀이로

집요하게 그를 요구하여

아끼던 참모와 절반 넘은 병사들 죽은

전투갱변 모래밭에서

부하들 넋 위로할 겸

장막 차리고 효수 광경 보고 있다.

 

백화산 저승골 너머로

해는 니웃니웃 저물어가고

고려 망나니

쓰윽 막걸리 한잔 마신 다음

다시 한잔 부어 칼끝 뿌려본다.

 

문득

넘어가는 서산

찌그러진 남은 햇살 한 줄

칼날 번져 섬광 번쩍인다.

 

둥둥 북소리

명 재촉하고

어제 충신

오늘 역적 되어

적도 손에 노리개 될 줄

그저 망국 恨만 서럽다.

 

파죽지세 몰려온

몽고 적장 차라대 맞아

금돌성 진 치고

백성들과 생사고락 같이 한 그 때

주마간산처럼 스쳐간다.

 

저승門 유인하여

천예 절벽 몰아넣고

남은 잔병

저승폭포 협공하여

몽고병 시체 山을 이룬 보복으로

패전 후

강토 유린하며

20만 6천 8백여 명 양민,

포로로 잡아갔을 때

이미 포악함 알았지만

지루한 전투 끝

승기 잡은 그날

화살 하나 그 죽이지 못하고

네 번째 지휘관 사살했음

통탄할 따름이다.

 

금돌산성 차지 못 해

恨 남기노라

한성봉(恨城峰) 명명하고

방성통곡하며

떠나간 방성재건만

그 고개 아래

같은 피붙이 손 끌려

패장에게 인도된 원통함

구천 가서나 씻으려나.

 

동족에게

바다 빠져 죽임 당한

구주전투 명장 김경손 장군

그 비통한 최후보다

조금 위안 되는 건

물고기 밥 되지 않음이려나.

 

지랄타이(車羅大)

손 내리자

몸에서 솟구친

붉은 피 하늘 가리고

끌려온 백성들

참담한 눈물 속

기어이 역사 한 꼭지 남기고

나라 망한 유민이 되어

세월 속으로 떠나가며

하늘 다해 부르짖는

마지막 이야기.

 

남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남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

 

 

‘관병이 합심하여‘ 등으로 관을 앞세우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함이거나 관이 늘 민(민중)앞에 있어야하다는 한심한 짓거리임으로 뒤늦게나마 지역민들의 자위적 항전이었다고 오류를 바로 잡아 상주산성 전투에 대한 상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더한 고향 사랑일 것이다.

 

http://blog.daum.net/podoo/13755148 참조

http://www.podoo.com

나는 농부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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