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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소리

박계해 칼럼
2015.09.17 21:04

[박계해 칼럼]질문을 위한 질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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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위한 질문 2

 

아직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무대 위에 천천히, 천천히 들려오는 노랫소리.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그리고 조금씩 밝아지는 무대 위에는 단발머리 여고생들이 슬로우 버전으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다.

 

이건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에 내가 속한 교사극단에서 만든 연극의 첫 장면이었다. 성적이 최상위권인 여고생이 연극제에 나가려고 하는 데서 빚어지는 어른들과의 갈등을 소재로 하는 내용이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한 시간만 빼 달라는 학생과 그럴 수 없다는 선생님이 실랑이하는 상황을 만들다가 한 여고 선생님이 그 장면을 제안했다.

 

“야간자율학습 할 때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그러고 노는 거예요. 참내, 다 큰 애들이.......” 그리고 그녀는, ‘너무 슬픈 풍경 아닌가요?’ 라고 덧붙였다.

“창밖으로 그걸 바라보는 선생님 모습이 더 슬픈데요. 감독하느라 집에도 못가고....... 애들은 재밌게 놀 뿐인데 감상에 빠져서는, 하하~.”

“우리가 고등학교 때도 똑 같이 그랬어요. 저는 나름 도움이 된 편이에요. 공부하다가 진력이 나면 제법 땡땡이도 치고........ ”

“아유, 저는 통제 당하는 건 질색이에요. 그 시절은 생각만 해도 끔찍해. 학교에 폭탄을 던지고 싶었다니까요.”

“만약, 고3 아이들에게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 까요?”

“아무래도 더 많이 놀겠죠. 억지로라도 교실에 있으면 공부밖에 할 게 없으니까 좀 나을 테고.”

“줄에 묶어 놨던 짐승을 풀어놔 보세요, 제멋대로죠. 사고치고....... 인간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계속 묶어놓게 되고 짐승은 더 사나워지죠. 인간도 마찬가지겠죠.”

“그 때나 지금이나 뭐 변한 게 별로 없다니 슬프긴 하다아....... .”

“그러네요....... 그 때가 이십년 전인데 지금도 별이 뜨는 시간까지 학교에 있는 건 똑 같네요.”

 

그러니까 사십년 전이나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꽃다운 이팔청춘들이 별이 뜨는 시간에 학교에 있는 건 똑 같다. ‘야간자율학습’이란 이름도 똑 같고, 아이들은 여전히 ‘야간강제학습’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많은 선생님들이 ‘자율’이라는 단어를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애썼던 날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자율성을 주자, 원하는 아이들만 남는 걸로 하자.’

그러나, 그러면 누가 남겠느냐는 말로 그 의견은 묵살되었고 ‘누가 남겠느냐’는 말은 뻔뻔하게도 떳떳한 말이 되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조금도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더라면. 나도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걸 그랬다.

 

사십년 전,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나는 투덜거리는 대신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어야 했다. 고장이 난 듯 가지 않는 시계바늘을 노려보는 대신 ‘갇힌 시간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야 했다. 강제수용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긍정적인 마음으로 루이제 린저의 책을 필사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필력이나마 좋아졌으리.

 

그리고 이십년 전, 나는 그 따위 연극이나 만드는 대신 아이들에게 그 시간을 잘 활용하는 법을 일러주는 편이 나았다. 원칙에 어긋난다며 시비 걸고 따지는 대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야,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여!’라고 말해주는 편이 나았다.

 

사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다. 달밤에 고무줄 놀이하는 여고생들의 모습에서 슬픔을 느끼는 쪽이 더 문젠 지도 모른다. 열심히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는 동심으로 돌아가 고무줄놀이도 하고 종이 쳐도 모르고 놀다가 복도에 꿇어앉기도 하는 풍경이야말로 학창시절의 멋진 추억거리가 아닌가. 벌레가 나오는 밥과 너절한 여인숙에서의 잠도 수학여행의 추억이라며 가슴 뭉클하게 이야기하는 우리세대인데.

나는 자율 학습이 못마땅해서 그런 친구들까지 못마땅하고 선생님도 학교도 다 못마땅한 불만분자였음이 분명하다.

 

부족한 잠 때문에 만성피로에 시달렸지만 한 명이라도 더 명문대학에 진학시키려 애쓰다 과로로 인해 돌아가신 K선생님이 떠오른다. 그는 3학년 담임만 자청했고 입시 전문 교사임을 인정받는 것에 존재의 가치를 둔 듯 자신과 아이들을 한데 묶어 달렸다. 그렇게 3년 째 되던 해에는 늘 목에다 침을 꽂고 계셨다.

‘이 새끼들이 사람 잡겠다‘고 말하던 목소리에는 자신이 그렇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좋은 선생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선생의 적이었고 선두의 몇몇 아이들은 총애를 받았다.

 

그 몇몇 아이들을 위해 남은 아이들은 함께 야자를 하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 시간에 입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는 집에 가서도 입시 준비를 열심히 할 것이고, 그 시간에 권태와 씨름했던 아이는 집에 가서도 빈둥거리며 스스로를 한심해 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어떤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면(혹은 그것을 욕망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잘 하기란 어렵고, 공부 역시 그렇다. 장소와 여건의 영향도 있지만 마음가짐의 문제가 제일 큰 것 아닐까.

 

하지만 분명히 그 통제된 시간의 힘으로 입시에 성공하고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된 아이들은 존재한다. 반면에 통제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이들은 자학의 벽돌을 높이 쌓다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 결과 눈 밖에 난 이후에는 본의 아니게 무단결석 등으로 이어져 탈선의 길을 걷기도 한다. (야자까지 이어질 하루가 끔찍해서 교문 앞에서 발길을 되돌리는 건 아주 짧은 순간의 선택이지만 그로인해 인생이 이상하게 꼬여버리기도 하니까.)

 

그 시간이 약이 되는 아이, 그 시간이 독이 되는 아이가 있다. 사십 년 전에도 이십년 전에도 지금도. 그 시간은 정말로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둘 다에게 약이 되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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